연말연시 연극가…애증의 심리극 뮤지컬·폭소극 뜨거운 무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4면

IMF시대라 하나 연극계는 담담하다.

늘 썰렁한 객석, 그래도 끊임없이 막은 올랐기 때문이다.

무대에서 발산되는 열정은 보는 이를 언제나 미열같은 흥분에 젖게 한다.

처음 무대를 찾는 이에게 그것은 상상하지 못한 예술적 충격을 선사한다.

연말연시 연극가에 '가족용' 이 많이 눈에 띈다.

공연장을 처음 가보는 식구와 함께 한편의 연극 또는 뮤지컬을 즐기는 것은 한해를 보내고 맞는 시즌의 가장 아름다운 행사가 될 만하다.

어른 취향으로는 손숙.윤소정 주연의 '그 자매에게 무슨일이 일어났나?' 와 뮤지컬 '지상에서 부르는 마지막 노래' 가 있다.

'그 자매…' 는 왕년에는 스타였으나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는 두 자매가 엮는 애증의 미학이다.

쉰세살의 동갑, 중견배우 손숙.윤소정이 한치의 양보없는 연기대결을 펼치며 치밀한 심리극을 이끌어 간다.

둘의 공연은 25년만의 일이다. '…마지막 노래' 는 죽음 앞에서 구원받은 한 모자간의 정을 슬픈 색채로 그리는 '살롱뮤지컬' 이다.

뮤지컬 답지않게 '죽음' 이란 어두운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콧등이 시큼해지는 최루성 드라마다.

20.30대의 비교적 젊은 관객용 연극도 준비돼 있다.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재회의 순환과정을 코믹터치로 엮은 '용띠 위에 개띠' 는 유쾌한 폭소극으로 손색이 없다.

김미경.이도경.강지은 3명이 교체 출연하는 개성연기도 볼만하다.

결혼때문에 졸지에 기.미혼녀로 갈린 두 여성의 넋두리를 담은 '결혼한 여자와 결혼안한 여자' 는 결혼이란 대사를 앞둔 청춘남녀의 필수 관람용이다.

뮤지컬 '황제' 는 작품 내용의 성격상 기독교 가정의 관람을 권하고 싶다.

서울창무극단이 만든 이 작품은 구한말 기독정신의 실천에 정진했던 소양 주기철 목사의 일대기를 뮤지컬로 꾸민 것이다.

국난 극복의 사표 (師表)가 절실한 요즘, 주목사의 나라사랑 정신도 배울 점이 많다.

청소년용이면서 온 가족이 즐겁게 볼 만한 작품으로는 뮤지컬 '지하철 1호선' 과 '유쾌한氏 모자' 를 권할 만하다.

'지하철…' 은 이미 잘 알려진대로 극단 학전의 히트상품이다.

애인을 찾아 서울로 오는 옌벤처녀의 눈으로 본 세상풍경이다.

그 풍경의 주인공들은 지하철 1호선과 함께 달리는 창녀.부랑아.사기꾼 등이다.

5인조 록 밴드의 강렬한 라이브 연주와 촌철살인의 세태풍자로 인기가 높다.

'유쾌한氏 모자' 는 이사를 앞두고 유쾌한씨 일가가 벌이는 소동을 랩음악에 실어 보내는 가족용 뮤지컬이다.

비록 남루한 물건일망정 가족의 손때가가 묻어있면 그것이 바로 황금같은 보물임을 느껴보자.

정재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