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 '로빈슨과 방드르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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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슨과 방드르디
원제 Vendredi ou la vie sauvage
미셸 투르니에 지음, 이원복 옮김
좋은벗, 222쪽, 8000원

서양인 로빈슨과 원주민 방드르디는 태평양의 무인도 ‘스페란자’에서 문명과 야만인이라는 경계가 무너진 새로운 삶을 발견한다.

신간 『로빈슨과 방드르디』는 현대 프랑스 최고의 지성으로 꼽히는 미셸 투르니에가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의 모험』을 패러디한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1967년작)을 청소년용으로 만든 책이다.

책의 중간 부분까지는 『로빈슨 크루소의 모험』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로빈슨이 무인도에 서구 문명을 옮겨놓고, 방드르디(프랑스어로 금요일)를 구해줘 자신의 노예로 삼는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후반부는 완전히 다르다. 섬에 만들어 놓은 로빈슨의 문명이 일순간에 모두 사라지면서 방드르디와의 관계가 반전되는 것이다.

투르니에는 방드르디를 통해 문명의 삶보다 원시의 삶, 다시 말해 자연인으로서의 삶을 미화한다. 로빈슨에 의해 구원된 방드르디는 나체로 날음식을 먹고 개를 껴안고 풀더미에서 잔다. 레비스트로스의 구분에 따르면 날음식을 먹는 방드르디는 미개인이고 익힌 음식을 먹는 로빈슨은 문명인인 것이다. 하지만 투르니에는 이런 이분법에 동의하지 않는다. 로빈슨은 고독을 괴로워하지만 방드르디는 고독을 즐긴다. 로빈슨은 동굴 속에서만 자궁 같은 안락함을 느끼나 방드르디는 로빈슨이 곁에 없어도 자기 방식으로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투르니에는 레비스트로스적 ‘문명’과 ‘미개’의 구분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디포의 책에는 없는 대폭발이라는 사건을 만든다. 방드르디가 로빈슨 몰래 권위의 상징인 파이프를 피우다 들키자 그것을 동굴 속에 던져 섬을 카오스 상태로 만든 것이다.

‘문명’의 폭발과 함께 로빈슨과 방드르디는 주종관계에서 평등관계로 바뀌어 형제처럼 지내게 된다. 이때부터 로빈슨은 방드르디를 통해 호모 파베르(공작하는 인간)에서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로 변신해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로빈슨은 방드르디에게서 사냥도구인 동시에 무기가 되는 볼라스 던지기, 세상을 거꾸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물구나무서서 걷기, 영원한 비상을 꿈꾸는 활쏘기, 상대방을 이해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는 역할 바꾸기 놀이, 자연을 통한 수수께끼 놀이식 언어교육, 아카로니 부족의 수화 소통방식 등을 배운다. 놀이를 통해 방드르디는 노예생활의 우울한 기억을 지우고, 로빈슨은 자신이 방드르디에 대해 가혹하게 대했다는 사실에 대해 회한을 품게 된다.

로빈슨은 영국배 화이트버드호가 섬에 나타났을 때 디포의 로빈슨과 달리 구조된다는 기쁨보다 28년2개월22일이란 망각의 시간이 되살아나 순식간에 늙어버린 자신과 자유롭고 행복한 삶이 끝나는 데 대해 아쉬움을 느낀다. 그는 선원들이 섬의 자연을 훼손하고, 동물들을 학살하고, 금화 한 잎 때문에 참혹한 싸움을 하며, 선상에서 어린 선원을 무자비하게 학대하는 광경을 보고는 선원들을 타락한 문명이 파견한 전령으로 여기고 문명의 세계로 돌아가지 않기로 결심 한다. 그는 섬에 남아 젊고 멋진 삶을 꿈꾼다. 원시인의 삶을 선택한 로빈슨에게 섬은 이제 루소가 말한 ‘행복의 도피처’, 토머스 모어가 말한 ‘이상적인 사회의 본거지’, 작가가 말한 ‘관계의 단절, 절대’로서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 유토피아가 된다.

『로빈슨과 방드르디』는 현대문명의 맹점이 무엇인지, 데카르트 이후 서구 사회를 지배해온 합리주의의 허점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도록 한다. 나아가 서구식 문화환경을 절대시하는 우월적 태도, 다른 문화와 관습을 무조건 배척하는 배타적 사고방식,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인위적 질서로 재편하려는 문명적 조급증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에 대한 깨달음을 준다.

이용주(서원대 공연예술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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