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한국정부 4대과제 제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국가 부도라는 최악의 위기를 일단 벗어난 한국이 앞으로 보다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 취해야 할 정책은 어떤 것인가.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29일 (현지시간) 자 사설을 통해 새로 출범하는 김대중 (金大中) 정부에 다음과 같은 4대 과제를 즉각 시행하라고 충고했다.

▶부실한 금융기관의 정리 ▶외국자본 유치와 동시에 내국인의 기업지분 확대▶서비스 산업과 중소기업 진흥▶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와 사회보장확충 정책 등이다.

이 신문은 "김대중 차기대통령은 행정경험이 전무하며 제한된 경제 지식을 갖고 있을 뿐이라는 점에서 우려의 시각도 있다" 고 밝히고 그러나 "그같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용기, 근로계층의 신뢰, 위기의 주범으로 비난받고 있는 '앙시앙 레짐 (구체제)' 으로부터 독립적이라는 점에서 현 개혁을 이끌 인물" 로 평가했다.

또 김대중당선자는 개혁 조치가 한국에만 이익이 되는 것이 아니라 도움을 준 국외자들에게도 동시에 이익이 된다는 확신을 심어주어야 한다고 이 신문은 지적했다.

약 6백억달러에 이르는 구제금융과 25일 전격 발표된 1백억달러의 긴급자금 지원은 결코 한국에 산타클로스가 내려준 선물이 아니며 금융 위기의 확산 방지를 통해 국제 금융시장의 안정을 유지하고 자국의 투자손실을 막기 위한 서방선진국의 지원일 뿐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러한 지원의 대가는 분명하다.

빚더미에 올라앉은 부실 금융기관의 파산이 가속화될 것이며 주가가 폭락한 상태에서 외국 자본의 한국 진출이 보다 용이해짐에 따라 '주식회사 한국' 은 이제 헐값에 팔리게 될 것이다.

지난 반세기동안 1인당 국민소득이 17배 이상 증가하며 거의 완벽에 가까운 고용수준을 이룬 중앙 집권적인 한국의 경제발전 모델은 한국민이 원한다 할지라도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정부는 현 위기를 극복하고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위해 어떠한 정책을 취해야 하는가.

무엇보다도 우선 현재의 부실한 금융기관을 즉시 폐쇄하고 생존 가능성이 있는 금융기관들은 한시 바삐 영업정상화시켜 강력한 구조로 금융시장을 재편성해야 한다.

지난 90년 일본을 병들게 했던 것처럼 언제까지나 부실한 금융기관으로 인해 경제가 고통받아서는 안된다.

두번째, 피할 수 없는 것이며 동시에 바람직하기도 한 것인데 한국에서 앞으로 외국인의 한국기업 소유가 더욱 확대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가족 집단이 소유하는 대기업이 파산으로 치닫거나 헐값에 팔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국책 투자기금 등이 이들 기업에 가지고 있는 부채를 주식으로 바꾸어 출자한뒤 내국인들에게 다시 매각하는 방안을 촉진시켜야 한다.

셋째, 서비스 산업의 육성을 위해 경제 각 분야에 대한 규제를 철폐하는 한편 중소기업육성 정책을 펼쳐야 한다.

넷째, 노동시장에 관한 각종 규제를 조심스럽게 풀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는 동시에 근로자를 위한 복지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은 새 정부가 근로자들이 간절히 원하는 직업의 안정성을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한국민과 이미 한국 경제에 전권 (全權) 을 행사하는 힘을 가진 국외자들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개혁을 이끌어 나가는 것이 새정부의 과제다.

양자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지만 김대중당선자는 지금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해야 하고 그렇게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해야만 한다.

염태정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