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On Sunday

봉하마을 주민들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기자는 4월 들어서만 두 번, 지금까지 모두 아홉 번 봉하마을에 다녀왔다. 동료들은 나한테 봉하마을 주민이 다 됐다는 우스갯소리도 한다. 그래서인지 봉하마을 주민들의 요즘 일이 그저 남의 일 같진 않다. 봉화산(烽火山) 봉수대 아래 있는 마을이라 해 붙여진 이름 ‘봉하’(烽下) 마을. 경남 김해군 진영읍에서도 10리를 더 들어가는 본산리 봉화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주민이라곤 44가구에 120명이 전부다. 비가 조금만 와도 물이 차 농사를 망칠 정도였다는 봉하마을. 그래서 이곳은 과거 ‘까마귀가 와도 먹을 것이 없어 울고 돌아가는 마을’이라는 웃지 못할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내세울 것 없던 봉하마을이 외부에 알려지기 시작한 건 2002년 대선을 치르면서부터다. 노무현 후보가 본래 전라도 강진 사람이라는 유언비어가 돌았을 때 그는 “10대조 할아버지 때부터 김해 봉하마을에서 살아왔다”고 항변한 일도 있다. 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엔 마을 주민과 비슷한 수의 내외신 기자들이 이곳을 찾았다. 외지인이 많이 찾아들면서 좋은 점도 있었지만 귀찮은 일도 생겼다. 종종 청와대 앞이 아니라 봉하마을 광장을 찾아 민원성 시위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2003년 5월엔 민원성 시위로 마을이 시끄러워지자 마을 이장과 주민들이 민원인들에게 자제를 부탁하는 일까지 생겼다.

노 전 대통령이 내려와 살면서 마을은 더욱 유명세를 탔다. 많을 땐 하루에 1만 명 이상이 마을을 찾았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다 보니 마을에선 전에 없던 소매치기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외지인들이 조용한 마을 분위기를 해친다며 투덜대는 사람도 있었지만 마을 주민 대부분은 “이제야 사람 사는 것 같다”며 즐거워했다.

1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마을에 사람들은 북적이지만 주민들의 표정은 어둡다. 노 전 대통령에게 걸었던 기대가 안타까움과 실망으로 급격히 바뀌면서 심리적 충격을 적잖이 받았다. 외지인들이 내뱉는 비난 때문에 마음의 상처도 입었다. 마을 전체를 싸잡아 나쁘게 이야기하던 관광객과 말싸움도 벌였다. 노 전 대통령 규탄 시위를 하러 보수단체 회원들이 몰려와 마을에 한바탕 난리가 나기도 했다. 주민들은 마을에 진을 치고 있는 취재진들로부터 큰 스트레스도 받고 있다. 오후 7시만 넘어도 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어 적막함이 감돌던 마을이 취재진 때문에 어수선해졌다. 마을의 상징인 사저 뒤편 봉화산 사자바위도 이미 취재 카메라에 점령됐다. 방송국에서 헬기까지 띄운다는 소식에 주민들의 마음은 더욱 심란하기만 하다.

한마을 사람이라지만 주민들이 노 전 대통령의 얼굴을 못 본 지도 벌써 다섯 달째다. 팝송 ‘그린 그린 그래스 오브 홈’(Green Green Grass of Home)을 개사해 “고향 텍사스로 돌아갈 날을 고대한다”고 노래를 불렀던 조지 부시 전 대통령. 얼마 전 TV에선 마을 주민들의 식사 초대에도 흔쾌히 응하며 평범한 할아버지로 돌아온 부시 대통령의 소식을 전했다. 뉴스를 본 봉하마을 사람들은 부러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