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스 파고의 ‘눈가림’ 실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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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호 30면

지난주 미국의 대형 은행인 웰스 파고가 세계를 놀라게 했다. 1분기 순익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것이란 전망을 발표해서다. 1분기 30억 달러 순익이 예상된다는 3장짜리 보도 자료가 나간 9일, 웰스의 주가는 급등했다. 어떻게 그런 수치가 나왔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주가는 전날보다 32% 올랐다. 투자자들이 시장에 보낸 메시지는 분명하다. “순익의 내용이 무슨 상관이냐”.

그러나 웰스가 발표한 숫자의 이면을 파 보면 몇 가지 점이 우려된다. 22일 웰스의 1분기 실적이 공식 발표될 때 네 가지 점을 유의해 살펴야 한다.

첫째, ‘숫자 놀음’이다. 웰스의 ‘깜짝 실적’은 회계상의 장난일지 모른다. 웰스는 지난해 와코비아 은행을 125억 달러에 인수했다. 이를 통해 웰스는 대차대조표에 와코비아가 쌓은 75억 달러의 대손충당금을 합산했다. 대손충당금은 부채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미래 손실을 예상해 대차대조표에 준비금을 쌓는 것이다. 빚이 없어지면 충당금도 줄어든다.

와코비아와의 합병으로 웰스는 75억 달러 한도 내에서 대손충당금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게 됐다. 웰스가 원래 보유하고 있는 모든 종류의 채무에 대한 충당금을 여기서 가져다 쓸 수 있다. 대손충당금을 줄이면 순익은 늘어난다. 75억 달러는 와코비아의 3522억 달러에 이르는 대출과 관련돼 있다. 그런데 웰스의 연간 보고서에 따르면 웰스는 이 3522억 달러의 대출에 대해 향후 추가 손실이 전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런 것을 감안하면 웰스의 부실 자산 청소 규모가 왜 그렇게 작은지 설명이 된다. 웰스는 1분기 33억 달러어치의 부실을 털어 냈다. 지난해 4분기 웰스와 와코비아의 부실 청소 규모(총 61억 달러)에 비하면 매우 적은 액수다.

둘째는 자본 조작이다. 요즘 대부분의 은행은 자본을 측정하는 데 유형(단순) 자기자본(TCE)을 활용한다. 회계상의 고전적인 방법은 아니다. TCE는 자기자본에서 우선주와 특허권·영업권 등의 무형 자산을 빼고 계산한다. 이런 식으로 측정하면 웰스의 지난해 12월 31일 현재 TCE는 135억 달러, 혹은 유형 자산의 1.1%다. 그러나 지난달 6일 언론에 발표한 자료를 통해 웰스는 지난해 말 TCE가 360억 달러라고 했다. 어떻게 그런 수치를 얻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연간 보고서를 봐도 어떻게 그렇게 높은 수치가 나왔는지는 찾아낼 수 없다.

셋째, ‘이해할 수 없는’ 자산이다. 지난해 12월 31일 현재 웰스의 대차대조표를 보면 1098억 달러가 ‘기타 자산’이라고 표기돼 있다. 도대체 이 숫자가 뭘까. 이 숫자의 의미를 찾으려면 재무제표의 주석을 들여다봐야 한다. 그런데 이게 웃기다. 주석에 따르면 기타 자산을 차지하는 가장 큰 부분은 ‘기타’다. 무려 442억 달러나 된다. 그래 맞다. ‘기타 자산’을 차지하는 가장 큰 부분은 ‘기타’다. 이게 의미하는 게 뭐냐고? 공시로는 알 수 없다. 대변인에게 물어봐도 답이 없다. 이 ‘기타’ 442억 달러는 웰스의 TCE보다 많다. 거기에 도대체 뭐가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넷째는 손실 묻어 버리기다. 투자자들이 얼마나 빨리 망각하는가. 웰스 실적 발표 일주일 전, 미 금융회계기준위원회(FASB)는 금융권의 압력에 따라 시가 평가 회계 기준을 완화했다. 부실 자산의 평가손실 반영을 줄여줬다. 웰스의 순익이 정말 이익을 의미할까. 재무제표를 보기 전까지는 아무 의미가 없다. 투자자들은 그걸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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