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을 땅 밑으로 넣고, 땅을 도시 위로 드러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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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호 31면

ECC 현상설계 당선 후 도미니크 페로(사진)를 한국에 어떻게 소개해야 좋을지 매스컴은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프랑스에서 온 세계적 스타 건축가라고 알려졌다. 페로 자신은 반갑지 않았을 것이다. 건축 분야에서는 신동이나 스타라는 개념이 가능하지 않다. 건축은 그 재능이 어릴 적 발현될 수 있는 전문 영역이 아니다. 샛별처럼 등장해 주변을 밝힐 만큼 속성으로 성숙되는 영역도 아니다. 대중적 호응을 몰고 다니기에는 팬이 적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에게 스타 건축가라는 용어가 스타 미술가, 스타 음악가보다 익숙한 이유는, 모르고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왕 초대한 외국 건축가가 어떻게 좋은지에 대한 관심보다 몸값=설계비 정도의 계산법으로 스타 건축가를 분류한다. 세계적 스타 건축가의 공통점은 현상설계 시작할 때, 당선되어 시상식 때, 완공되어 초청 강연회 때 통틀어 3회가량 한국을 방문한다는 것.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는

 페로는 수십 차례 현장을 다녀갔다. 그의 사무소 홈페이지의 ECC 소개에는 특별한 사진 한 장이 있다. 연분홍 타월을 머리에 두른 아주머니가 지붕 공원 땡볕에서 회양목을 한 그루씩 심고 있는 장면이다. 첨단 건축물 사진 옆에 노동의 장면을 나란히 두었다. 그가 믿는 건축에서의 소중한 가치의 범위가 짐작된다.

 건축, 도시계획 공부를 마친 후 페로는 자신의 사무소를 설립하기 직전 역사학으로 다시 학위를 받는다. 그는 초기 작업부터 일관되게 역사적 도시에 대한 건축적 재현에 주력했다. 그 방법으로 건축을 지표면 아래로 침하시킨 후 땅을 도시 위로 드러내는 수법을 택한다. 도려내어 드러나는 지층의 단면에 건축을 끼워 넣는다. 대지에 누적된 역사의 층 위에 건축을 하나의 켜로 올려놓되, 대지와 건축물을 구분해 공간적 경험이 둘 사이를 넘나들도록 한다. 그는 어느 건축에나 물리적 사실이 보여 주는 결정적 순간이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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