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4·19의 교훈, 독재·부패 부른 ‘절제의 실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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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호 02면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을 평가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저우언라이(周恩來ㆍ1898~1976)가 말했다. 이 말은 틀렸다. 역사를 평가해 교훈을 얻어야 오늘과 내일을 올바르게 살 수 있다.

3ㆍ1운동 90주년을 맞은 올해 우리에게 4ㆍ19혁명은 무엇일까.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ㆍ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로 시작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17일 국가조찬기도회 메시지에서 “4ㆍ19혁명은 우리 민주화 도정에 우뚝 솟아 있는 높은 산이며, 자랑스러운 승리의 역사”라고 규정했다. 노무현 대통령도 4ㆍ19는 “우리 민중이 이뤄낸 승리의 역사”라고 했다.

왜 승리의 역사인지 회고해 보자.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참가한 1919년 2ㆍ8독립선언→19년 3ㆍ1운동→26년 6ㆍ10만세운동→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45년 신의주학생의거가 없는 대한민국의 수립은 없었다. 민주발전도 마찬가지다. 60년 2·28 대구학생의거→60년 4ㆍ19혁명→79년 부마민주항쟁→80년 5ㆍ18광주민주화운동→87년 민주항쟁의 주역도 학생이었다. 학생들의 희생을 밑거름 삼아 우리는 두 차례 선거를 통한 여야 간 정권 교체를 이룩했다. 세계적인 석학들이 한국 민주주의가 일본 민주주의에 앞섰다고 평가하는 이유다.

세계화 시대에선 4ㆍ19혁명을 1817년 시작된 독일 학생운동, 러시아 나로드니키 운동, 중국 5ㆍ4운동, 1968년 프랑스 5월혁명, 1989년 천안문 사건과 비교역사학적으로 조명할 필요도 있다. 그런 학문적 검토도 이미 결론이 나 있다. 우리의 4ㆍ19혁명이나 학생운동처럼 장구한 세월 동안 국권 회복과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4ㆍ19혁명은 그러나 불행한 혁명이기도 했다. 학생은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하는 사람’이다. 학생들을 정치혁명에 뛰어들게 한 것은 절제에 실패한 통치자와 부패한 그 측근들의 장기 집권 욕구였다. 절제는 동서고금의 주요 덕목이다. 절제는 서양적 가치체계에서 기본덕목(cardinal virtues) 중 하나다. 불교의 오계(五戒), 유교의 오상(五常)의 기반이자 요약이 되는 것도 절제다.

절제가 덕목인 것은 그만큼 실천이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우리 역대 대통령들은 절제에 실패했다. 권력과 돈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했다.

4ㆍ19 민주이념은 ‘불의에 항거’하는 것이다. 48년 전 불의는 일차적으로 독재 정권 연장을 위한 부정선거였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독재나 장기 집권은 꿈꿀 수 없다. 부패라는 달콤한 유혹은 최근 박연차 리스트 사건에서 보듯 아직 남아 있다. 21세기엔 4ㆍ19의 불행은 없어야 한다. 대통령과 측근들이 권력의 절제를 생각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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