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향 거부하다 숨진 빨치산·간첩 등 3명 민주화 운동 인정 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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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의문사위.위원장 한상범)가 유신 시절 정보기관의 사상 전향 공작에 불응하다 숨진 남파간첩.빨치산 출신 재소자들의 죽음을 민주화 운동으로 결론내려 논란이 일고 있다. 이 위원회는 법률상 대통령 소속이다. 위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며 활동 결과도 대통령에게 보고한다.

의문사위는 1일 "1970년대 대전.대구 교도소 수감 도중 사망한 비전향 장기수 최석기 등 세명이 민주화 운동과 관련성이 있음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의문사위는 이어 "1973년부터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와 법무부가 비전향 장기수들을 상대로 전향공작을 폈으며, 최씨 등은 이 과정에서 위법한 공권력에 의해 사망했다"며 "반인륜적 전향공작에 굴하지 않은 양심의 죽음"이라고 강조했다.

또 "전향 강요는 기본적으로 불법이었고, 헌법이 보장한 사상.양심의 자유는 내심(內心)의 자유로 강요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이들은 인간으로서 기본 권리를 침해당했고 그에 맞서 저항하는 과정에서 전향제도나 준법서약서 등 악법이 철폐됐으므로 민주화에 기여한 것"이라고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반해 1기 의문사위는 2002년 9월 이들 세 사람이 위법한 공권력에 의해 숨진 사실은 인정했으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한 사회주의자로서 민주화운동과 연관성이 없다"고 판정했다.

이번에 의문사위에 의해 민주화 운동을 한 것으로 인정받은 최석기.박융서씨는 남파간첩이며, 손윤규씨는 빨치산 출신이다.

한편 의문사위는 재소자를 동원해 사상 전향 공작을 펴다 최씨를 고문해 숨지게 한 당시 중앙정보부와 대전교도소 관계자들에 대해 상해치사.직무유기 등 혐의로 고발할 방침이다.

◇민주화 운동=의문사위의 규정에 따르면 의문사는'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한 죽음'이다. 또 민주화 운동은 '1969년 8월 3선 개헌 이후 권위주의적 통치에 저항해 민주헌정질서의 확립에 기여하고 국민의 자유과 권리를 회복.신장시킨 활동'을 뜻한다. 의문사로 인정되면'민주화 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명예회복과 보상 조치를 받을 수 있다.

이철재.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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