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가요무대 '숨은손' 김점도씨,대중가요 1백년 채록 전집출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젊은이에게 '뽕짝' 처럼 천대 받는 것은 없다.

때로는 청승맞아 보인다.

시대착오적인 느낌까지 든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 보라. 젊은이들의 유행가는 도무지 따라 잡을 수 없고 그래서 노래방에서 한두번 불러본 뽕짝이 왠지 친근하게 느껴지는 때가 온다.

자꾸 부르다 보면 구수해 지고 뭔가 우러나는 맛이 있다.

이 맛이구나 하면 이제 더이상 '뽕짝' 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가요무대' 는 지난 달 4일 방송 12주년을 맞기까지 향수에 목마른 국내외 시청자들과 희노애락을 함께 나누며 전통가요, 소위 뽕짝을 지켜왔다.

'가요무대' 에는 매회 10여곡이 전파를 타 10여년의 연륜이 쌓이는 동안 6천여곡에 5백여명의 가수들이 무대에 올랐다.

이 무대는 세사람에 의해 꾸며진다.

최공섭 (崔公燮) PD, 이장순 (李長純) 작가와 함께 감초 역할을 하는 자문위원 김점도 (金占道.62) 씨. 이 가운데 자문위원 김씨는 '가요무대' 에서 아이디어 회의와 선곡, 그리고 자막에 오르는 작사.작곡자 이름의 교정을 보고 있다.

일견 별볼일 없는 임무인 것같다.

그러나 "1백여년의 역사를 갖는 우리 가요사가 왜곡된 채 고정될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서 교정작업을 시작하게 됐다" 고 강조하는 김씨의 '가요변천사 바로잡기' 노력은 올해로 30년째 접어든다.

자료가 없어지고 구전으로만 전해져 자칫 잘못 기록될 수도 있는 우리 가요의 실체를 되살려 내고 있는 것이다.

김씨가 원곡의 작사자.작곡가 복원작업에 뛰어들게 된 사연은 67년 인천에서 카바레 밴드 지휘를 맡게되면서 시작한다.

당시 출판되던 악보에는 전주.간주없이 바로 연주로 들어가기 때문에 손님들이 '스텝' 밟는데 차질이 생겼던 것. 심심치 않게 전.간주에 대한 요청을 받다보니 차제에 김씨가 나서 전.간주를 붙이면서 악보를 모으게 됐다.

그런데 1년도 못가 김씨의 악보모으기는 제동이 걸렸다.

악보의 가사와 해방전 출반된 SP음반을 통해 배웠던 구전가사가 조금씩 달랐던 것. "그때부터 SP음반을 구하러 다닌거죠. 청계천 8가와 인사동 거리를 숱하게 뒤졌습니다."

이렇게 김씨는 순전히 발품만으로 1천7백여장의 SP음반을 소장하게 됐다.

SP음반에는 작사자.작곡가.가수에 대한 '오리지날' 정보가 수록돼 있어 겉표지만 봐도 전쟁후 개작된 LP음반의 '본적' 을 찾을 수 있었다.

김씨는 요즘도 어디엔가 흩어져 있을 2백여장의 SP음반을 찾아 나서지만 "새마을운동.아파트 붐때문에 사라진 SP음반이 태반" 이라며 아쉬워한다.

천신만고끝에 SP음반을 손에 넣었다고 작업이 끝난게 아니다.

한 고비를 넘었을 뿐이다.

여기저기 긁히고 낡아 가사가 거의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 가수였던 반야월 선생과 함께 수십번 돌려보며 앞뒤 맥락까지 따져 봤지만 안들리는 게 있더군요. " 그래서 반선생과 논쟁도 많았다.

35년에 나온 시극 '정한 (情恨) 의 밤차' (박영호 작사) 의 가사를 놓고 밤새 씨름하다 다음날 지인들을 불러놓고 불명확한 음반의 가사와 출반 당시 기억을 짜맞추기도 했다.

김씨가 가장 아끼는 음반은 36년 시에론 레코드에서 강문수씨가 취입한 '눈물의 해협' .이 음반은 남인수씨가 37년 OK레코드에서 '애수의 소야곡' 이란 제목으로 다시 취입해 현재 애창되는 곡. 강씨와 남씨는 동일인이다.

김씨는 내년초 삼호음악도서에서 한국 대중가요 1백년을 망라하는 20권짜리 대전집을 출간할 계획이다.

이 전집에는 윤심덕의 '사의 찬미' 에서부터 젝키의 '기사도' 까지 1만여곡의 가요가 수록돼 있다.

"부부 생활 40년을 묵묵히 뒷바라지 해준 아내의 고생 없이는 불가능한 일" 이라며 김씨는 아내에게 30년 노작의 영예를 돌렸다.

정용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