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춘익·전상국·문순태씨 소설·콩트집 출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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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춥고 슬프다.

오랜 기다림 끝에 쏟아지는 첫눈도, 도심에 간혹 눈에 띠는 성탄 장식도 민망스럽다.

견뎌내야만 한 긴 겨울을 뻔히 알면서도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돼갈지 몰라 더욱 불안하다.

우리가 어려웠던 시절, 봄이 올 것을 굳게 믿으며 사람 사이의 따스한 정이 흘렀던 과거와 고향을 회상하는 소설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최근 손춘익씨 (57) 는 장편 '추억 가까이' (책만드는집刊) , 전상국씨 (57) 는 콩트집 '우리 때는…' (백년도서) , 그리고 문순태씨 (56) 는 소설집 '시간의 샘물' 을 각각 펴냈다.

60년대 중반 문단에 나와 이제 중진급으로 접어들고 있는 이 세작가들은 각기 포항.춘천.광주등 고향 언저리에 살며 문학활동을 펼치고 있다.

때문에 혹독하게 어려웠으면서도 고향의 따스했던 인정회복의 메시지가 이들의 작품에서는 나온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적어도 생의 진지성에 대한 천착은 포기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고 밝힌 손씨의 '추억 가까이' 는 해방 직후 궁핍한 시절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방 도시 변두리를 무대로 한 이 장편에는 고향에서 뿌리 뽑힌 자들의 절망적인 생활이 있고, 좌우 대립의 핏발 선 눈길이 있으며 말단 권력의 횡포도 들어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암담한 현실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은 삶들이 이 작품을 이끌고 나간다.

“여의치 않을 때라도 어머니는 결코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는다.

하다 못해 찬물 한 그릇이라도 떠가서 노인을 대접하려고 한다.”

더 나아질 삶과 세상에 대한 꿈은 바로 인간에 대한 예의와 사람살이의 정에서 나온다.

'우리 때는…' 에는 전씨가 그동안 발표한 콩트 중 가난했지만 열심히 살아냈던 지난 시절 이야기 30편이 추려져 있다.

60년대 글줄깨나 쓰고 읽을 줄 알던 인재들도 서독에 광부로, 간호사로 나갔다.

그리고 70년대에는 '잘 살아보세' 라는 일념으로 새벽종을 울렸고 중동 건설현장으로, 베트남 전장으로 외화벌이를 나섰다.

그 시절 애환과 추억들이 '우리 때는…' 에는 짤막하지만 압축적으로 담겨 있다.

“기억을 재료로 한 상상의 그물을 짜내는 그 시대 그 얘기들의 재현이야말로 추억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는 전씨의 말은 어려운 시절이 다시 추억처럼 찾아온 이 추운 계절에 의미하는 바가 크다.

문씨가 소설집으로는 9년만에 내놓은 '시간의 샘물' 에는 9편의 중.단편들이 실려 있다.

문씨의 소설들은 고향의 상처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

표제작인 '시간의 샘물' 은 이념대립에 의해 막혀버린 고향의 샘을 다시 파 분단의 상처를 치유하고 고향을 복원시키자는 것이다.

“갈등을 겪고 있는 양쪽 사람 모두에게 각시샘물을 마시게 하고 싶었다.

각시샘물을 흘러넘치게 한다면 고향을 떠나 살면서 갈증의 고통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고향의 샘을 다시 솟게 하려는 주인공의 자세는 너와 내가 스스럼 없이 나눴던 공동체를 회복하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렇듯 이제 50대 후반에서 환갑을 바라보는 작가들이 비록 작품의 무게를 다를지라도 한결같이 자신이 지나온 궁핍한 시대를 돌아보며 그래도 따스했던 가족 공동체적 모습을 떠올리며 추운 마음들을 녹이고 있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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