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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유럽의 골동품 수집 붐 위조 미술품 거래도 ‘호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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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최근 한 경매장에 김홍도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병풍 그림 화첩평생도(畵帖平生圖)가 추정가 4500만∼6500만원에 나왔다. 고미술 전문가가 한마디 했다. “김홍도의 8폭 병풍이 4500만원이라는 게 말이 됩니까. 진짜 김홍도 작품이라면 4500만원이 아니라 5억, 10억원이 넘어야죠.” 이 병풍의 진위와는 별도로 고미술·현대미술 할 것 없이 한국 미술계가 지난 몇 년 동안 위작 소동으로 크고 작은 홍역을 겪은 것은 사실이다.

18세기 유럽에서도 가짜 미술품 소동이 흔했다. 귀족계급이 다투어 해외여행에 나선 ‘그랜드 투어’가 본격화되자 많은 유럽인이 이탈리아에 가서 미술품을 수집했다. 관광안내원들은 이탈리아 화가·화상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고객과 예술가 양쪽으로부터 수수료를 챙겼다. 영국의 젊은 귀족들은 당연히 동향 사람에게서 물건을 구입할 때 더 안전함을 느꼈다. 웨일스 출신의 교활한 상인 토머스 젱킨스(1722~1798)는 고객들의 이런 약점을 이용해 엄청난 돈을 벌었다. 로마의 대표적 골동품 취급상이었던 그는 구입 의사는 있지만 당장 현금이 없는 귀족들에게 자금을 대출해 줌으로써 이중으로 이익을 챙겼다.

젱킨스는 연기력이 대단했다. 수십 배의 이익을 취하면서도 소장품과 헤어지는 것이 못내 아쉽다는 듯 눈물을 흘렸다. 악어의 눈물이 따로 없었다. 유물 복원기술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의 손이 닿기만 하면 조각난 고대의 토르소에는 감쪽같이 팔·다리·머리가 생겨났고, 정교한 니코틴 처리를 거치면 그가 청구한 금액에 상응하는 고색창연한 얼룩이 생겼다. 그는 고객에게 결코 비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객의 무지를 은근히 강조하면서 자신의 뛰어난 감식력을 과시했고, 이렇게 고객의 기를 죽인 뒤 분위기를 틈타 주머니를 털었다.

물론 젱킨스보다 형편없는 사기꾼도 많았다. 그들은 싸구려 모조품에 터무니없는 값을 매겨 귀가 얇은 귀족들의 돈을 털었다. 여행자치고 빈손으로 돌아온 사람은 거의 없었다. 고대 그리스의 대리석 작품에서 당대 이탈리아 화가의 수채화에 이르기까지 수천 점의 그림·조각상이 북유럽으로 반입됐다. 그 즈음 독일 화가 요한 조퍼니는 저명한 수집가 찰스 타운리(1737~1805, 그림 맨 오른쪽 남자)가 그랜드 투어에서 수집한 미술품에 둘러싸여 있는 모습을 그렸다. 타운리 또한 젱킨스의 고객 중 한 사람이었다.

박상익(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서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