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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국토포럼 ④ ‘장수산업’ 키우는 순창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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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이 날망(동산)에 풀 좀 매러 나왔제, 여그 있는 걸 어떻게 알았당가. 동네 사람덜 암도 모르게 나왔는디.”

전북 순창군 동계면 어치마을. 뒷산 언덕의 파밭에서 호미질을 하던 한옥금 할머니는 흙을 털어내며 주름진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그는 주민등록상 1909년생이지만 실제 나이는 102살이다.

순창군 오동마을에 사는 70~80대 할머니들이 장맛을 보면서 파안대소하고 있다. 오동마을 주민 44명 가운데 65세 이상은 20명, 그중에서 80세 이상이 5명이다. [프리랜서 오종찬]


하지만 외지에서 찾아오는 손님들은 “정말 그 나이가 맞느냐”고 거듭 확인할 정도로 정정하다. 눈이 좀 침침하고 외출할 때 주렁(지팡이)을 짚지만 귀도 밝고 말도 또렷하다. 식사 때면 밥 한 그릇에 소주 한두 잔을 반주로 곁들인다. 몇 달 전에 본 사람까지 알아볼 정도로 기억력이 좋다.

순창군은 인구가 3만 명을 간신히 넘는 농촌 마을이다. 고추장을 빼고는 내세울 만한 특산물도 없다.

순창군에는 100세 이상의 고령자가 13명이나 된다. 학계 기준에 따른 장수 노인(85세 이상)은 650명으로 인구의 2.1%를 차지한다. 주변 지자체들보다 0.5%포인트 높은 수치다. 경로당에 가면 90세를 넘긴 고령자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구림면은 107세의 박복동 할머니를 비롯해 90세 이상이 20명에 이른다. 80세 이상은 164명이다. 방화마을의 황의섭(62) 이장은 “우리 동네에만 80세 이상의 어르신이 20명”이라며 “환갑이 넘은 내가 마을의 막내로 담배나 막걸리 사러 가는 심부름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순창군은 장수 주민이 많은 이유로 쾌적한 자연환경을 꼽는다. 연평균 13.2도의 온화한 기온에 물이 맑고 공기가 깨끗하다. 서울대 의대 박상철(생화학) 교수는 “지형이 따뜻한 분지형이라 몸을 움직이고 일하기에 안성맞춤이며, 이는 노화 예방과 활력 유지 등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발효식품이 발달한 것도 요인 중 하나다. ‘순창 고추장’은 조선시대부터 궁중에 진상될 만큼 명성을 떨쳤다. 주민들의 밥상에는 매끼 된장·청국장이 빠지지 않고 올라온다.

순창군은 ‘장수’를 성장동력 산업의 지렛대로 삼고 있다. 먼저 발효 건강식품에 주목했다. ‘장수고을 순창’이라는 브랜드가 붙은 고추장·된장·청국장은 큰 인기를 끈다. 매년 10~15%의 매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순창지역의 장류 업체만 80여 개나 된다. 매출은 3500억원대에 이른다. 연간 고추장 생산량은 4만7000여t으로 국내 생산량의 40%를 차지한다. 장류산업은 내년 6월 미생물연구소가 문을 열면 더욱 활기를 띨 전망이다.

순창군은 실버타운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인계면 쌍암리에는 장수연구소·장수체험관·노인 지도자 양성을 맡게 될 아카데미관이 들어선다. 건강 기능성 식품·실버용품 전문 농공단지도 조성한다. 도시민 은퇴자들을 위한 전원주택 단지, 첨단 의료·복지시설이 입주하는 시니어콤플렉스(28만㎡)도 구상 중이다. 순창군은 실버산업이 앞으로 10년 내 1500억~2000억원의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으로 전망한다. 강인형 순창군수는 “건강하게 오래 사는 어르신들이야말로 우리 경쟁력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순창=장대석 기자, 사진=프리랜서 오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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