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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 3040 기대주 ⑩·끝 미디어 아티스트 정연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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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미디어 아티스트 정연두(40·사진)씨는 ‘오지랖 넓은 아줌마’ 같다. 남의 일에 관심이 많다. “너는 꿈이 뭐니?” 그가 낯선 이에게 다가가는 방식이다. 그 결과 주유소 아르바이트 소년은 그의 사진 속에서 포뮬러 원 자동차 경주자가 됐고, 아이스크림점의 아르바이트 소녀는 극지방에서 개썰매를 모는 에스키모가 됐다. ‘내사랑 지니(2003)’ 시리즈다. 변두리의 후줄근한 콜라텍을 드나드는 노인들은 왈츠에 맞춰 뱅그르르 돌며 하늘을 떠다니는 요정처럼 보인다. 사진 속 인물을 오려 벽지처럼 붙인 ‘보라매 댄스홀’(2001) 연작이다. 지난해, 그는 여름 내내 서울 종로 탑골공원 등 노인들이 모이는 곳을 쫓아다녔다. 회한과 허세, 푸념이 버무려진 그들의 인생역정을 몇 시간이고 들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수공기억’이다. 두 대의 모니터 중 한쪽은 노인의 인터뷰가, 다른 한 쪽은 이를 시각화한 영상 장면이 펼쳐진다.

정씨는 ‘미련한 장인’이다. 그는 질러가기를 피하고, 굳이 비효율성을 추구한다. 가령 “내 첫사랑이 회장님 사모님이 돼 있었던 것을 몇 년 전 신문의 부고 기사를 보고서야 알았다”는 한 노인의 허세섞인 인생역정을 시각화한 장면은 이렇다. 흑백 영정 사진을 가운데 두고 색색의 화환이 하나하나 이를 둘러싸며 화면을 채운다. 화환은 다시 장례식장의 흰색이 돼 허공으로 흩어진다. 사과를 포장하는 스티로폼에 일일이 알전구를 심어 화환을 만들었다. “영화 ‘해리포터’의 특수효과보다는 ‘모여라 꿈동산’류의 인형극에 나오는 조악함이 더 현실적이다”라는 게 그의 고집이다. 그래서 그는 “나는 과거지향적인 사람이다. 나 역시 첨단 기기를 사용하지만 보는 이에게는 그게 인간적인 기술로 보여졌으면 한다”고 말한다.

‘내사랑 지니’ 시리즈의 최신작. 22번째 주인공은 대만의 고속도로변에서 환각제 ‘빈랑’을 파는 아가씨(사진 左)다. “나는 초등학교 이후 행복했던 적이 없다.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소원대로 정연두씨는 그녀가 졸업한 학교 를 찾아가 양해를 얻어 사진(右)을 찍었다. [정연두씨 제공]


그가 올해 발표할 ‘시네매지션’도 이같은 카메라의 마술을 이용한다. 관객을 모아 공연을 하는 동시에 무대 뒤 스크린을 통해 공연 장면을 찍어 보여준다. 사람 눈으로 보는 진실, 카메라가 만들어내는 착시를 바로 확인할 수 있게 할 작정이다. 카메라의 눈속임을 까발리기보다는 눈과 기계의 간극이 얼마나 마술적이고 신비로운지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다. 이 프로젝트는 올 10월 일본 ‘요코하마 국제영상제’를 거쳐, 11월 미국 ‘뉴욕 퍼포먼스 비엔날레’에서 발표된다.

그는 2007년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에 최연소로 선정됐다. 이때 만든 ‘다큐멘터리 노스탤지어’는 뉴욕 현대미술관( MoMA)에 소장됐다. 40명을 목표로 22명까지 진행된 ‘내사랑 지니’ 프로젝트는 미국 에스티로더 재단과 알렉산더 칼더 재단이 벌써 샀다. 비록 본인은 “나는 매 순간 막다른 골목을 달린다. 부딪쳐도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돌진하면 마지막 순간 벽이 열리더라”고 털어놓지만.

권근영 기자

◆미디어 아티스트 정연두=1969년 경남 진주 생. 94년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한 뒤 95년 영국 런던 센트럴 세인트마틴 칼리지를 거쳐(수료), 97년 런던대 골드스미스 칼리지를 석사 졸업했다. 2002년엔 제2회 상하이 비엔날레에서 아시아유럽문화상을 수상했고, 2007년엔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에 선정됐다. ‘수공기억’ 시리즈는 내년 1월 미국 워싱턴 스미소니언 미술관에서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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