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연예인 선거운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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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92년 미국 대통령선거가 민주당 클린턴 후보의 압승으로 끝났을 때 직접.간접으로 선거운동에 간여했던 할리우드 연예인들의 표정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자선모금 파티에서 "클린턴 지지, 부시는 은퇴를…" 이란 내용의 즉석 노래를 불렀던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나 거액의 정치헌금을 내놓았던 더스틴 호프먼 등 민주당 지지파들의 콧대는 높아질대로 높아진 반면 찰턴 헤스턴.아널드 슈워제네거 등 공화당 지지파들은 풀죽은 모습이었다.

찰턴 헤스턴을비롯, 프랭크 시내트라.폴 뉴먼.워런 비티 등은 일찍부터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선거때마다 특정후보를 위해 발벗고 나섰지만 연예인들이 대거 선거판에 뛰어들기 시작한 것은 배우 출신의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선거에 나선 80년대초부터였다.

바꿔 말하면 그 이전까지는 후보와의 개인적 친분관계나 취미, 혹은 유권자로서의 단순한 정치적 관심이 동기의 주류였지만 레이건 이후에는 '정치적 야심' 까지 편승하기에 이른 것이다.

한데 레이건을 모델로 삼으려는 정치편향의 연예인들에 대해서는 비판적 견해가 종종 제기된다.

정치에 입문하기 전 잠깐 연예계에 몸담았다고 해서 레이건이 '배우 출신' 임을 강조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이런 질문이 던져진다.

"당신들은 정치가로서의 레이건과 같은 용기와 품위와 도덕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무엇보다 당신들은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제2의 레이건이 되겠다는 꿈을 버려라. " 연예인의정치에 대한 '관심' 이 '야심' 으로까지 발전하는 것은 그들 자신에 대한 대중적 인기를 정치적 인기와 동질 (同質) 의 것으로 간주하는 착각에서 비롯한다.

그들을 선거전에 '이용' 하려는 정치인들의 생각도 비슷할 것이다.

1930년대 후반 인기 절정이었던 게리 쿠퍼에게 대통령 출마를 종용했던 것이 좋은 예다.

물론 게리 쿠퍼는 "나를 영화 속의 대통령으로 착각하지 말라" 며 거절했다.

연예인이라고 해서 특정후보의 지지나 당선을 위한 선거운동에 뛰어들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들 자신이 정치를 하겠다면 말릴 일도 아니다.

하지만 순수성만은 따져볼 필요가 있다.

92년 대선때 여당의 선거운동에 적극 나섰던 한 연예인이 현 정권 말기에 문화예술계 요직에 발탁된 사실을 새삼 떠올리게 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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