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붕괴로 돈줄이 막혔다…국내외 어디서도 안빌려줘 기업 연쇄부도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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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금융메커니즘이 총체적인 마비상태에 빠지면서 돈이 돌지않아 재계순위 12위 (자산기준) 인 한라그룹이 무너지는등 대기업의 연말 연쇄부도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 (IMF) 의 부실 금융기관 정리요구로 존폐 기로에 선 종합금융사들이 '나부터 살자' 며 대출을 일제히 회수하고 나선데다 기업들은 국내든, 해외든 돈을 빌릴곳이 아무데도 없는등 신용공황의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다.

금융기관들이 '돈 빌려주는 곳' 에서 '돈 되찾아가는 곳' 으로 바뀐 것이다.

우량기업들은 가수요적 성격의 현금확보전쟁까지 벌이고 있다.

한 시중은행 종합기획부장은 "금융시스템이 붕괴된 상태여서 기업부도는 이제부터 본격화될 것" 이라며 "부도 행진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점치기도 어려운 상황" 이라고 말했다.

재계에선 부도예상 기업 리스트가 나도는 가운데 어느 그룹이 부도가 날지 몰라 안절부절 못하는 심리적 공황상태가 나타나고 있다.

은행권도 조만간 국제결제은행 (BIS) 의 자기자본 비율 기준을 맞추기위해 돈줄죄기에 가세할 것이 확실시됨에 따라 자금위기는 더욱 고조되고있다.

재계와 금융계에선 이대로 가다간 기업 연쇄부도가 다시 금융기관 부도를 낳는등 자칫 공멸의 '금융대란' 이 닥쳐올 것으로 우려하는 분위기다.

박철 (朴哲) 한국은행 자금부장은 "기업과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이 계속되는 한편 금융긴축이 지속될 전망이어서 상당기간 고통스러울 전망" 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현재의 금융위기를 해결하기위해선 정부.금융기관.기업간의 신뢰회복이 급선무라고 기업.금융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기업들은 금융권의 신규대출 중단및 기존 대출금 회수에 대응할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증시침체와 국제 신인도 추락으로 직접금융과 해외자금조달도 사실상 불가능해졌기 때문에 모든 자금조달 길이 막힌 최악의 상태다.

D그룹 관계자는 "가뜩이나 돈 구할 길이 없는데 제1, 2, 3금융권 모두 자금을 빨아들이는 형국이어서 자금메커니즘이 붕괴된 상태" 라고 말했다.

당장 급하지 않은 우량 대기업들도 미래가 불투명하자 최악의 경우에 대비한 가수요적 자금확보에 나서며 금리가 20%대까지 치솟는등 빈사상태에 빠진 기업들의 목을 더욱 조이고 있다.

사채시장도 이자율이 월 4.5%까지 치솟은뒤 전주들이 대출을 중단하며 사실상 폐쇄된 상태다.

기업들은 "현금확보만이 살길" 이라는 분위기다.

해외차입금상환에 시달리고 있는 일부 업종에서는 밀어내기식 외상수출을 통해서라도 수출대금을 현금화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이미 맥주 3사가 판매감소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도매상과의 거래를 모두 현금으로만 하기로 하는등 국내 내수판매에서도 재고를 싸게라도 빨리 팔아치워 현금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다.

보험.종금.증권사등을 갖고 있는 그룹은 이들 계열 금융기관을 통해 자기 계열사에 긴급 수혈하는 전략도 세우고 있다.

민병관.박의준.홍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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