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사랑하기만 한다면 사랑으로만 살기 원했듯 사랑으로만 죽는 것도 좋습니다/ 벚꽃처럼 화려한 절정에서 한꺼번에 이 세상 모든 게 져내려도 좋습니다.” 김하인이 벚꽃에 비긴 사랑예찬은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그러나 일본 군국주의는 꽃비 속을 거닐던 30년대 모던보이와 모던걸들의 가슴을 사랑으로 한껏 달뜨게 놓아두지 않았다. “너와 나는 동기 사쿠라/ 같은 훈련소의 연병장에 피어/ 한번 핀 꽃이라면 지는 것을 각오했다/ 멋지게 지자꾸나 나라를 위해.” 38년에 나온 일본군가 ‘동기(同期)의 사쿠라’가 노래하는 벚꽃은 더 이상 사랑의 시어가 아니었다. 낙화(落花)의 미학은 제국과 일왕을 위해 기꺼이 죽으라며 희생을 꼬드기는 몽환의 수사로 둔갑했다.
태평양전쟁(1941∼45) 당시 가미카제(神風) 전투기는 미군 함대를 향해 꽃잎처럼 떨어져 내렸다. 벚꽃을 가슴과 어깨에 꽂고 희생을 다짐하던 18세짜리 앳된 조종사의 사진이 애처롭다(출처: 『사쿠라가 지다 젊음도 지다』, 오오누키 에미코 저, 이향철 역, 모멘토). 그때 조선의 젊은이 11명도 ‘대동아공영’의 미명 아래 사지로 내몰렸다. 일본 문부성 검정을 통과한 후소샤판과 지유사판 왜곡 교과서는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군국의 가치를 가르치고 싶어 한다. “천황, 즉 일본을 위해 져라.” 국가라는 전체를 위해 너 자신을 희생하라고 말이다. 벚꽃이 군국주의 일본의 상징 모티브로 다시 부상할 것 같은 오늘이다. 그래서 난분분 난분분 떨어져 내리는 벚꽃의 향연을 마음 편히 즐기기 쉽지 않다. “펑! 튀밥 튀기듯 벚나무들/ 공중 가득 흰 꽃밥 튀겨놓은 날/ 잠시 세상 그만두고/ 그 아래로 휴가 갈 일이다.” 황지우의 시구처럼 벚나무 아래서 더 머물고 싶은 게 봄날을 즐기고 싶은 모든 이의 마음인데 말이다.
허동현(경희대 학부대학장·한국근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