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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 기획가 김미경씨의 '관객위한' 색다른 도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5면

무용 기획가 김미경 (37) 씨. 그녀는 지금 무용에 이런 저런 장르를 접합시키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먼저, 그가 지난 10월 안무가 이무빈씨와 함께 펼쳤던 공연 '세월의 헛간' 을 들여다보자. 무대에 설치된 스크린에 16㎜ 영화가 뜬다.

'끝' 이라는 자막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영 엉뚱하다.

'엔드 크레딧 (마지막 자막)' 으로 이어진후 영사기가 멈춘다.

그리고 무대 공연. 서있는 7구의 시체에 입혔던 상복이 벗겨져 하늘로 올라가고 몸뚱아리만 남는다.

잠시후 몸에는 다시 옷이 입혀지고 삶이 펼쳐진다.

웃고, 싸우고, 사랑하고, 헤어지고…. 이 모든 동작은 함께 무대에 오른 록 밴드의 연주와 호흡을 같이 한다.

공연은 다시 화면으로 간다.

흑백영화 속에선 남녀가 달음박질을 한다.

뒤로 물러나는 자연풍경을 붙들지 못하고 앞으로만 내달린다.

결혼식 장면, 사랑을 나누는 현장이 산만하게 뿌려진다.

그리고 어린 아이가 캠코더를 들고 파인더로 세상구경을 한다.

갑자기 뿌옇게 변하는 필름. 무대로 이야기가 옮겨진다.

영화속에 등장했던 얼굴들이 객석을 향해 고함을 지른다.

절규와 욕설과 울부짖음이 쏟아진다.

밴드의 연주가 빨라진다.

비명이 숨가쁘다.

호흡이 가파르다.

한 사람씩 사라지며 공연은 끝 - . 이 작품은 이무빈씨가 약 5년전 드나들었던 양수리의 허름한 작업실을 모티프로 삶의 허망함과 아쉬움을 담아낸 것이다.

김미경씨의 설명 - "무대의 춤과 록 음악을 통해 내면의 갈등을 분출해냈다면, 영화는 스토리 전개, 즉 내레이션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무용과 관객의 틈을 영상을 통해 좁히려는 시도죠. " 일단 참신하다는 총평이었지만, "영화와 춤.음악의 어울림이 매끄럽지 않다" 는 평론가들의 비난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김씨는 일단 첫발을 내디딘 데서 흡족해한다.

10살부터 한국무용을 시작해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하고 오랫동안 무용공연 기획.행정을 해온 그녀는 3년가량 독일에 머물며 빠져들었던 '신표현주의' 적 작품을 어렴풋이나마 구현한 게 감격스러웠다.

"무대 가득 카네이션을 깔고 마치 연극을 하듯 작품을 진행시키는 피나 바우쉬의 공연을 보며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무용의 경계를 넘나드는 새로운 시도들은 결국 관객과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죠. " 김씨는 강의와 후진 양성에 '지나치게' 시간을 할애하는 우리 무용계 풍토에선 혁명적인 발상과 변신을 통한 대중화는 어렵다고 진단한다.

"결국 무용가를 위한, 무용가에 의한, 무용가의 공연에 맴도는 거죠. " 그녀는 지금 두번째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내년 3월쯤 선보일 이번 작품은 사진과 소설과 연극의 요소들을 차용하는 시도다.

물론 이런 노력이 '맛없는 비빔밥' 으로 귀결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노력이 근사한 '품종개량' 으로 이어지리라는 확신을 내비침에 주저함이 없다.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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