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뮤지컬 무대 택한 알렉스와 임창정,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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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가수들이 뮤지컬 무대에 서는 건 이제 별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최근 꽤 인기를 얻고 있는 두 가수, 임창정(36)과 알렉스(본명 추헌곤·30)의 뮤지컬 입성은 조금 색다르다. 대규모 해외 라이선스 뮤지컬이 아닌, 이름없는 소극장 창작 뮤지컬을 택했다. 임창정씨는 28일부터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되는 ‘빨래’에 출연하며, 알렉스는 14일부터 서울 신당동 충무아트홀 블루 무대에 오르는 ‘온 에어’ 주인공을 맡았다.

‘온 에어’의 주인공을 맡은 알렉스는 “첫 뮤지컬이지만 나와 닮은 부분이 많은 캐릭터라 편안한 마음으로 연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플럭서스 뮤직 제공]

“나와 닮은 부분 많아 ”
‘온 에어’서 자신과 이름 같은 DJ역 알렉스

약속시간인 오전 11시 정각, 알렉스는 트레이닝복에 운동모자를 눌러 쓴 차림으로 나타났다. 전날 밤 라디오(MBC ‘푸른밤 그리고 알렉스입니다’) 방송을 새벽 2시에 마치고 제작진 회의가 있어 동이 트고야 집에 들어갔다고 했다. 뮤지컬 연습을 시작한 후, 하루에 길어야 4~5시간 자는 날의 연속이란다. “연습이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거든요. 뮤지컬은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고, 게다가 제가 제일 ‘초보’니까 게으름을 피울 수 없잖아요. 집에 왔다갔다 하는 시간도 아까워 아예 연습실에 침낭을 갖다둘까 생각하고 있어요.”

첫 뮤지컬 도전작인 ‘온 에어’는 알렉스에게 여러 모로 특별한 작품이다. 방송국을 배경으로 라디오 DJ와 PD의 알콩달콩한 사랑을 그린 이 작품에서 그는 자신과 이름이 같은 DJ ‘알렉스’를 연기한다.

“작년 11월 두 번째 공연을 보러 갔었는데 다른 배우가 알렉스 역할을 하는 걸 보니 기분이 묘하더라구요.” 그래서인지 이번 ‘3기 온 에어’의 주인공을 맡아달라는 제의가 들어왔을 때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대신 “알렉스가 알렉스로 출연하는 만큼, 주인공의 캐릭터를 나에게 맞춰 조금 수정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리하여 1, 2기의 까칠했던 주인공 알렉스는 조금 더 유머러스하고 따뜻한 캐릭터로 바뀌게 됐다.

그룹 ‘클래지콰이’의 멤버로 수많은 무대에서 노래를 했고, MBC 버라이어티 ‘우리 결혼했어요’에서는 ‘연기 아닌 연기’도 보여줬던 알렉스지만 연습 초기에는 뮤지컬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특히 힘들었던 것이 발성이다. “저는 주로 흉성(胸聲)을 사용해 노래하는 가수거든요. 듣기는 좋지만 전달력은 좀 떨어진다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이번 공연은 소극장 뮤지컬이라 마이크 없이 제 목소리만으로 객석 전체를 울려야 해요. 깊은 곳에서 힘있게 목소리를 끌어내다 보니 확실히 울림통이 좋아진 것 같습니다.” 오는 7월 ‘클래지콰이’ 4집 음반을 발표하고 한국과 일본 활동을 병행할 예정인 그는 “그 전에 일단 뮤지컬이라는 도전을 제대로, 즐겁게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며 서둘러 연습실로 향했다. 

이영희 기자

“16년 전 약속 지키려”
30회 공연 노 개런티로 ‘빨래’ 출연 임창정

임창정씨가 연기하는 ‘솔롱고’는 몽골에서 문학을 전공했으나 동생을 공부시키기 위해 한국에 와서 공장에 다니고 있는 불법체류자다. [원더스페이스 제공]

임창정씨가 ‘빨래’에 출연한다는 소식은 사실 의외였다. 2005년 초연된 뮤지컬 ‘빨래’는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사실감있게 다룬 작품이다. 엔터테이너로서 이미지가 강한 임씨가 재미있고 유쾌한 뮤지컬이 아닌, 사회성 짙은 작품에 과연 어울릴까 싶었다.

“16년 전 희원이형과의 약속을 이제 지킬 수 있게 된 거죠.”

그가 말하는 희원이 형이란, ‘빨래’의 제작자인 김희원(39)씨다. 둘의 인연은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기도 이천이 고향인 창정씨는 당시 혼자 서울로 올라와 “무대에 서고 싶다”며 현대극단에 입단했다. 두 사람은 ‘에비타’ ‘마의 태자’ 등의 뮤지컬에 같이 출연하며 죽이 잘 맞는 형·동생이 됐다.

사건이 하나 터졌다. 단원이 많지 않은 터라 배우들도 스태프처럼 세트 옮기는 일을 하곤 했는데 창정씨가 “잘못된 관행”이라며 반기를 들었다. 선배들은 막내의 행동을 “버릇없다”며 호되게 꾸짖었다. 그때 희원씨가 창정씨 편을 들었다. “ 막내가 틀린 말을 한 건 아니죠.” 둘은 ‘왕따’가 됐다.

딱히 잘 곳이 없던 창정씨를 희원씨가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 1년 정도 같이 살았다. 집엔 피아노가 있었다. 창정씨는 툭하면 피아노 앞에 앉아 이런저런 곡을 치고, 악보를 그려 나갔다. “형. 난 이 노래들 꼭 음반으로 내고 말거야.” “그래, 너 가수로 뜨면 나 잊지 말고…. 다음에 내가 뮤지컬 만들면 꼭 출연해야돼.”

그 시절 약속은 그저 추억이 될 것 같았다. 창정씨는 이후 가수·배우로 유명해졌다. 희원씨가 뮤지컬을 제작하고 있다는 소식을 창정씨가 알게 된 건 지난해였다. 바로 ‘빨래’였다. 창정씨는 혼자 대학로로 가서 봤다. “보는 내내 몇번을 울었는지 몰라요. 이런 진정성 있는 작품이 한국에 있다니, 그것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형이 만들었다니. 뮤지컬하자는 수많은 제의를 뿌리치고 기다린 보람이 있구나 싶었죠.”

둘은 당장 의기투합했다. 그런데 돈이 문제였다. 투자사가 망하면서 작품 제작은 표류했다. “형, 뭐가 문제인데. 어떻게 하면 작품을 올릴 수 있는데?” “네 개런티가 가장 크다.” “그래? 그럼 나 돈 안 받을께.” 창정씨는 이번에 노 개런티로 30회 공연에 출연한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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