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시대 반응“제2국치일” 울분·침통·불안…“빨리 벌어 갚는수 밖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정부가 국제통화기금 (IMF) 과 긴급자금지원 이행조건에 합의한 3일 오후 시민들과 각 사회단체는 "경제식민통치시대가 시작됐다" 며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시민들은 한결같이 '국가경제 부도위기' 를 초래한 정부와 정치권.금융계.재계의 책임을 지적하면서도 온 국민이 합심해 위기를 헤쳐나가야 한다는데 입을 모았다.

◇ 시민 = 주부 김유경 (金有慶.25.서울송파구신천동) 씨는 "경제를 이 지경으로 만들고도 국민의 과소비 탓으로만 돌리는 정부에 실망을 느낀다" 면서도 "지금은 국민 모두가 정신차리고 절약운동을 벌여야 할 때" 라고 말했다.

회사원 김천덕 (金天德.27.서울서초구서초동) 씨는 "입사한지 1년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감원바람에 위기감을 느낀다" 며 "국가적 위신 추락이 부끄럽지만 더 이상의 전락을 막기 위해서라도 분발할 것" 이라고 다짐했다.

최승진 (崔承振) 변호사는 "외국의 압력에 의해 경제주권을 내놓는 것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정부와 기업의 자성 (自省) 속에 국민이 지혜를 모아 위기를 헤쳐나가야 한다" 고 말했다.

◇ 대학가 = 서울대 김세원 (金世源) 교수는 "협상결과에 따라 시장개방이 너무 급속히 이뤄져 경제근간이 흔들릴 위험이 크고 앞으로 2, 3년동안 뼈를 깎는 아픔이 예상된다" 며 "IMF시대는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과 선단식 경영을 억제하는 긍정적 측면도 있는 만큼 건전한 시장경제체제를 확립해 재도약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고 말했다.

서울대생 주환수 (周煥守.23.국문4) 씨는 "한보.기아사태에서 우왕좌왕해 위기를 초래한 정부가 IMF협상에서조차 장기적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채 끌려다녔다" 며 "외화 빌리기에만 치중해 경제주권을 심각하게 침해한 이번 협상이 경제살리기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 이라고 말했다.

◇ 사회단체 = 전국연합 이창복 상임의장은 "IMF 구제금융으로 한국은 타율적인 구조조정과 금융.자본시장 조기개방등 심각한 경제주권의 종속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며 "IMF가 요구하는 경제구조조정은 미국식 경제논리에만 집착해 독특한 국내의 사회.경제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어서 국민들에게 가혹한 내핍을 강요할 것" 이라고 우려했다.

경실련 하승창 (河勝彰) 정책실장은 "대규모 실업사태에 대비해 정부는 고용보험제 외에도 다른 실업대책을 시급히 강구해 국민불안을 줄여야 한다" 고 지적했다.

흥사단 박성규 (朴聖圭) 사무총장은 "기업들이 근로자들의 희생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며 "기업이 앞장서 근로자를 보호하고 근로자를 바탕으로 탈출구를 마련해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참여연대 김기식 (金起式) 정책실장은 "정부가 주체적으로 단호한 경제정책 개혁을 시행하고, 기업은 감원에 앞서 접대비등 낭비성 비용을 줄이는 자구 (自救) 노력을 실시한다면 국민도 위기탈출을 위해 합심할 것" 이라고 말했다.

나현철·김종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