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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과소비와 허영의 결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괴테는 그의 작품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에서 "눈물로써 얻은 빵을 먹어 보지 못한 사람, 고통에 찬 밤을 잠자리에서 울면서 새워보지 못한 사람, 그 사람은 인생이 무엇인지 모른다" 고 했다.

고생을 해보지 않고 풍족한 생활에 길들여진 요즘 젊은이들은 자기 것이건, 남의 것이건 아껴 쓸 줄 모른다.

얼마 전 한 노교수가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1년간 연구하고 귀국해 자리를 같이 한 적이 있다.

한국 학생들이 언어연수차 영국으로 많이 몰려 왔는데 자기 규제나 정리가 되지 않아 학교 주변 하숙집에서 유독 한국 학생들은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한국 학생들은 자고 일어나면 침대도 정돈할 줄 모르고 화장실도 지저분하게 사용해 머리카락이나 비눗물.수건 등이 제멋대로 널려 있어 들여다보면 불쾌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아껴 쓰는 절약정신 없이 방이나 화장실에 불을 켜둔 채 나가는 것이 보통이고, 밤에 2층 계단에 켜둔 불도 낮에 스스로 끄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상아탑 밖의 사회도 사정은 마찬지다.

필자가 자주 가는 한 식당에서 중국 옌볜 (延邊) 출신 종업원 아가씨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같은 식당에서 일하는 한국 아가씨들의 생활태도에 지극히 당황한다는 것이다.

자기는 월급을 받아 꼬박꼬박 저축해 목돈을 마련하고 조금 더 고생해 옌볜 고향으로 돌아가 집도 하나 마련해 부모.동생들과 행복하게 살아갈 꿈으로 부풀어 있는데, 자기가 저축한 돈이 있음을 알고 한국 종업원들이 빌려 달라고 귀찮게 군다는 것이었다.

한 중국 교포 여자 눈에 비친 한국은 과소비와 허영심으로 들떠 있는 병든 사회였다.

일본에서는 한국보다 세탁소가 성업한다.

일본 사람들은 평생 옷 몇 벌을 가지고 닳아 해어질 때까지 자주 세탁해서 입지만 한국 사람들은 새것 사 입는 것을 선호하는지라 세탁소가 일본에서처럼 성업하지 못한다고 일본에서 살다 온 친구가 꼬집는다.

세계화 열풍 때문에 유치원생에서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서로 앞다퉈 해외로 외국어 연수를 떠난다.

그러나 뚜렷한 목표 없이 짧은 기간 동안 외국어가 통달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미리 외국어 문형을 많이 암기하고 착실히 준비된 기반 위에서 해외에 나가 실전연습 (performance) 을 해야 효과가 있지 아무 준비 없이 해외에서 외국어 몇 마디 얻어 듣고 와봤자 그러한 피상적인 언어실력을 가지고 새로운 정보나 지식을 습득할 수는 없다.

성의와 노력만 기울이면 국내에서도 외국어 실력은 얼마든지 배양할 수 있다.

현정부는 국민소득 1만달러 달성과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가입을 4년간 치적으로 삼아 과대포장해 선전했기 때문에 국민들은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양 으쓱해져 허영심과 과소비 풍조에 젖어버렸다.

그래서 너도 나도 경쟁하듯 해외로 나가 돈뿌리는 연습을 했다.

대기업들도 앞다퉈 국민들의 과소비 풍조에 일조했다.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고유 브랜드를 개발할 생각은 않고 손쉽게 외국 상품을 수입해 대대적 판촉을 함으로써 국민들의 소비심리만 자극하고 있다.

모피 수입도 한국이 단연 세계 제1위라고 한다.

누구 탓할 것 없이 정부.기업.국민 모두가 여태껏 어설프게 처신해 온 것에 대한 보답으로 받는 것이 국제통화기금 (IMF) 구제금융이다.

우리 모두 집안 하나 스스로 이끌어 갈 능력이 없으니 스스로 다시 이런 능력을 키울 때까지 IMF 신탁경제 틀 속에서 남의 손에 의한 변화를 맞이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허기증' 을 진정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게 그것을 아무리 설명해 주어도 그 참뜻을 모른다.

젊은이들에게 앞으로 닥칠 우리 경제의 어려움을 아무리 설명하고 절약을 권해도 아직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면 가는 데까지 가서 불황의 벼랑 끝에 서봐야 경제 위기가 무엇이고 인생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IMF 구제금융으로 짊어진 오명의 빚더미를 결코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줘선 안된다는 것이다.

박명석 <단국대교수·사회언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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