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한파]금융산업의 앞날…외국 '공룡은행'과 전면전 예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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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국내 금융시장 개방의 폭이 넓어지고 시기도 크게 앞당겨졌다.

국제통화기금 (IMF) 이 구제금융의 지원조건으로 시장개방까지 요구하고 나섬에 따라 울며 겨자먹기로 개방의 문고리를 열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당초 내년말로 예정됐던 외국은행의 국내 현지법인 설립이 내년초로 앞당겨지고 국내 은행의 인수와 합작을 통해 경영권을 갖는 것도 허용된다.

이제 낯선 이름의 외국계 은행이 주택가 모퉁이에 등장할 날도 멀지 않게 됐다.

외국인이 마음대로 은행을 사거나 새로 세울 수 있게 됨에 따라 국내 금융시장은 사실상 전면 개방의 시대를 맞은 셈이다.

그렇지 않아도 부실채권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국내 은행들은 채 몸을 추스르기도 전에 막강한 자본력.첨단 금융기법을 앞세운 외국계 은행들과 전면전을 벌여야 하는 험난한 길이 앞에 놓여있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개방의 확대가 만년 낙오병으로 치부되는 우리나라 금융산업에 새바람을 일으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주인 없는 은행들이 경쟁력을 갖추길 기다리느니 차라리 외국은행들과 처음부터 맞붙어 실전을 통해 체력을 키우자는 것이다.

그러나 나름대로 계획.일정을 가지고 시장을 개방하는 것과 지금처럼 남의 손에 떼밀려 억지로 문을 여는 것은 얘기가 사뭇 다르다.

현지법인의 설립이야 원래 예정된 것이니 만큼 시기가 몇달 앞당겨진다고 해서 큰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문제는 은행에 대해서도 적대적인 인수.합병 (M&A) 까지 허용하겠다고 한 대목이다.

외국인도 돈만 있으면 누구나 주식시장에서 특정 은행주식을 매집해 경영권을 장악한 후 은행 간판을 바꿔 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내 시중은행들이 덩치가 크다고는 하지만 국제기준으로 보면 아직은 초라한 수준이다.

더구나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는 주가와 치솟는 환율을 감안하면 국내 은행 한두개는 언제든지 외국인의 손에 넘어갈 수도 있다.

국내 일반은행을 다 합친 총 주식 가격은 한때 20조원에 달했지만 지금은 4조원에 불과하다.

이 정도면 외국 중견은행 한개의 주식 시가 총액을 넘지 못한다.

외국계 은행들은 아직 국내 은행의 인수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지는 않는다.

국내 은행들이 부실채권을 워낙 많이 안고 있는데다 잠재적인 부실요인까지 감안할 때 국내 은행을 사들이는게 별다른 실익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만 부실정리가 웬만큼 끝나고 시장이 안정되면 외국인에 의한 국내 은행의 매수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현재로선 시티은행이나 홍콩 상하이은행, 도이치 모건그렌펠은행등 소매금융쪽에 관심이 있는 외국계 은행들이 원매자로, 기업부실이 상대적으로 적은 국민은행.주택은행등이 인수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어쨌든 국내 은행들은 이제 국제적인 기준의 경쟁력을 갖추지 않고는 살아남기 힘든 치열한 생존경쟁의 한복판으로 몰리고 있다.

김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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