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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눈]공직사회의 구조조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대선 (大選) 과 연말연시 공직자 기강문란 특별감사에서 근무시간중 골프를 친 공직자 14명이 적발됐다.

어떤 정부투자 기관장은 20여차례나 근무시간중 골프를 쳐 왔고 또 다른 기관의 간부는 하청업체 업주들과 골프모임까지 만들어 즐겼던 것으로 드러났다.

며칠간의 감사원 감사로 이처럼 많이 적발된 것을 보면 요즘 공직자의 근무기강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만하다.

공직자 기강해이나 부정부패.비리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뇌물이나 공무원 부정을 다룬 기사가 빠지는 날이 없고 대형사건이 터질 때마다 공직자가 등장하지 않은 적이 없을 정도다.

아무리 레임덕 현상이라지만 특히 최근의 공직자들은 해도 너무한 것 같다.

한달에 한번씩 열리는 전국 부시장.부지사 회의에 16명중 10명 정도밖에 참석하지 않는 바람에 내무부가 행정지시조차 제대로 시달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한다.

또 몇몇 중앙부처에서는 임기말 단명 (短命) 을 두려워한 국장급 (2급 이사관) 들이 직업관료 최고의 영예라는 1급 (관리관) 승진을 기피하는 웃지 못할 일도 일어나고 있다.

서로 차지하지 못해 안달이던 서울지하철공사 사장 자리를 한때 서울시 고위 간부들이 고사 (固辭) 했던 일도 모두 임기말의 기현상들이다.

무려 4백여명의 공직자가 경기도파주군에 부동산 투기를 한 혐의로 조사받는 사건도 최근 공직사회의 의식을 알 수 있는 단적인 예다.

들리는 바론 개발설이 나돌면서 계획을 미리 알 수 있는 위치의 공무원을 중심으로 지위의 높낮이에 관계없이 마구 땅을 사들였다고 한다.

간부들의 정신자세가 이러니 하급자들인들 오죽하겠는가.

숙직.야근자들이 사무실에서 전화로 음성서비스 노래방을 연결해 놓고 즐기는가 하면 전화로 '오늘의 운세' 를 묻느라 밤을 새우기 일쑤라니 길게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지하철이 사흘이 멀다 하고 고장.사고가 반복되는 것도 근무자들의 해이한 자세와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경제난이 심화되면서 기업들은 50% 감원이니, 30% 기구축소니 하면서 저마다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올해보다 내년은 살기가 훨씬 힘들어지고 내후년은 내년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또 내년 우리나라 실업자가 1백만명을 넘어서고 내년말 물가는 지금의 2배쯤 될 것이란 전망이다.

특히 국제통화기금 (IMF)에 자금지원을 요청하면서부터는 더욱 겁주는 얘기들뿐이다.

이 때문에 그저 감원 안당한 것에 감지덕지하며 불안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게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아닌가.

이토록 온 국민이 추위를 느끼는데 공직사회만 무풍지대의 온실이라는 것은 말이 안된다.

이른바 나라의 주인이라는 국민들이 줄줄이 쓰러지는 판에 세금으로 살아가는 공무원들이 부패하고 방탕한다면 죄받을 일이 아니겠는가.

공무원의 신분보장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1급미만 공무원은 신분보장이 국가공무원법에 명시돼 있다.

실제로 공무원 자신들도 별탈 없으면 정년까지 채우는 것을 당연시한다.

많은 회사원들이 요즘들어 특히 공무원 신분을 부러워하는 것이 바로 이런 점이다.

또 아무리 나라살림이 어렵다고 해도 공무원들이 강건너 불로 여기는 풍조도 이 때문일 것이다.

잇따른 공직자 비리가 터지면서 공무원.국회의원부터 정리해고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사실 국가공무원법도 '직제와 정원의 개폐 (改廢) 또는 예산감소' 의 경우 공무원도 직권면직시킬 수 있도록 공직의 구조조정을 규정하고 있다.

지금은 공직자의 경쟁력이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므로 공직사회에도 품질개념이 도입돼야 한다.

공무원도 신분이 보장된다고 안심할 때는 지났다.

성실하고 능력있는 공무원만 신분이 보장되고 그렇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냉엄한 현실을 공무원들은 직시해야 한다.

공무원의 체질개선이 시급한 때다.

권일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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