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한파]금융기관 구조조정 파장(9)…기업자금난 최소화 '발등의 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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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예고된 구조조정이 예상보다 훨씬 빨리 현실로 닥쳤다. 금융기관들은 온통 긴장과 불안 일색이다.

국제통화기금 (IMF) 이 폐쇄를 요구한 금융기관의 명단이 명확히 나오지 않아 더욱 그렇다.

1일 은행과 종금사는 '대책' 도 없는 대책회의를 여느라 하루종일 부산했다.

부실여신.자기자본등 자료를 뽑아 "어디가 해당되느냐" "우리는 괜찮은 거냐" 등을 따져보기도 했다.'부실' 이라는 말만 들어도 과민반응하는 제일. 서울은행은 지난주 성업공사에 부실채권을 매각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제일은행은 2조5천억원, 서울은행은 1조9천8백억원을 처분해 큰 혹은 일단 뗐다는 것이다.

이들 은행의 표현을 빌리자면 "성업공사로부터 돈이 들어와 어느때보다 유동성 사정이 좋아졌다" 고 한다.

지표상으로 뚜렷이 개선조짐이 나오고 있어 IMF의 정리기준에는 벗어날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종금사들은 더욱 불안하다.

특히 지난달 22일 외환수급개선명령을 받은 12개 종금사들이 정리기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묘하게 '12개' 라는 숫자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비교적 건실하다는 은행.종금사들도 안심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IMF가 의도하는 구조조정이란 부실금융기관 몇군데 없애고 그치는 수준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규모가 작아 불리한 대접을 받지나 않을까 하는 점이다.

예컨대 부실은행은 너무 덩치가 커 함부로 손대지 못하고 우량은행은 덩치가 작다고 손쉽게 교통정리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장기신용은행의 한 관계자는 "소형 우량기관들이 단지 규모가 작다고 원하지 않는 구조조정 대상에 오르면 곤란하다" 고 말했다.

IMF와 정부의 지침이 나오기 전에 인수.합병 (M&A)에 대해 이미 준비작업을 시작한 곳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장기경영전략에 포함돼있던 내용을 내년도 경영전략으로 바꾼 것이다.

H은행의 한 임원은 "외국금융기관의 출자를 받아들여 대형화하려는 은행이 나오고 있다" 며 "이미 부실화한 국내은행과 합치는 것보다 훨씬 좋은 대안이 될 것" 이라고 말했다.

어쨌든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은 앞당겨지게 됐다.

IMF는 다른 나라에서도 지원조건으로 강력한 구조조정을 밀어붙였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수하르토 대통령의 아들이 운영하는 은행까지 영업을 정지시켰다.

정부는 금융시스템의 안정을 명분으로 IMF의 '급진적' 인 구조조정요구에 맞서고는 있다.

그러나 원칙에 따라 '망할 곳은 망하게 하자' 는 IMF를 얼마나 설득할지는 불확실하다.

문제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금융기관 이용자들에게 피해가 가는 것을 어떻게 최소화하느냐는 것이다.

또 금융기관의 정리해고.지분제한등 구조조정을 제한하고 있는 여러 규제도 함께 정비돼야 한다.

특히 부실은행.종금사에 당장 영업정지 조치를 내릴 경우 이들로부터 자금을 조달해온 기업들이 자금난을 맞게 된다.

예컨대 종금사를 파산시킬 경우 기업어음 (CP) 업무의 공백이 생겨 기업이 충격을 받게 된다.

부실 금융기관을 정리하다가 자칫 부실기업을 양산 (量産)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서울소재 한 대형종금사 사장은 "이번 조치가 실물부문에 대한 여신축소로 이어져서는 안될 것" 이라며 "정부가 종금사의 문을 닫게 하는 시기를 잘 택해야 한다" 고 강조했다.

또 LG경제연구원 이인형 (李寅炯) 금융연구실장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기업들의 자금난이 더 나빠지지 않도록 보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며 "은행에 CP업무를 터주는등 사전작업이 이뤄지지 않으면 금융시장에 더 큰 충격이 올 것" 이라고 말했다. 남윤호.박장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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