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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인터뷰]IMF 지원논의에 주요역할 담당 박영철 금융연구원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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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국제통화기금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일은 전국민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기고 있다.

이제 당장 실업과 도산등으로 점철될 엄청난 구조조정의 여파가 밀어닥칠 것으로 보인다.

IMF지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내 생활에는 어떤 영향이 있는지 더 나아가 내가 할 일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최근 IMF의 스탠리 피셔부총재가 금융지원을 협의하기 위해 서울에 와 서둘러 만난 사람이 박영철 (朴英哲) 금융연구원장이다.

朴원장은 미국과 국제금융계에 상시적인 대화채널을 유지하는 몇 안되는 전문가중의 한 사람이다.

IMF지원논의 초기에 나라안팎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朴원장을 만나봤다.

- 'IMF구제금융 신청' 이라는 너무나 뜻밖의 일에 나라 전체가 크게 당황하고 있습니다.

한때 내노라했던 기업들이 맥없이 쓰러지는가 하면 대대적인 감원 바람이 일면서 국민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습니다. 그나마 불행중 다행이라고 할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일본과 동남아의 경제도 위기 상황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현재 아시아 전체가 고전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일본 경제는 제조업을 근간으로 합니다.

한국을 포함, 아시아 대다수 국가들이 이런 경제체제를 답습해왔습니다. 금융업도 어떤 측면에서는 제조업의 지원 산업으로서 성장해왔던 거지요. 그런데 80년대 중반부터 정보.통신 대혁명이 시작되면서 금융을 포함한 서비스 산업의 중요성이 급속히 커지자 그만 제조업에만 매달렸던 아시아의 경제가 맥을 못추기 시작한 것입니다.

특히 서구국가들이 만든 글로벌 금융질서에 철저한 준비없이 금융시장을 개방하다가 변을 당한 것이죠. 은행에 의존하던 나라들이 서구국가들이 만든 증권시장 중심의 금융질서에 압도되어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일본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싫건 좋건 생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서구국가들이 만든 글로벌 경제에 적응해야합니다. "

- 朴원장께서는 올초부터 환율변동폭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셨고 또 국내 경제 실상을 외부에 알리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해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선 우리가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기 이전의 상황을 한번 평가해주시죠. 도대체 어쩌다가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된 것입니까.

"현재 경제 위기가 누가 어떤 잘못을 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정책당국과 모든 경제전문가들의 책임이라 해야겠죠. 단 위기에 몰려있는 이상 지난 수개월 동안 무엇을 잘못했으며 왜 실기 (失機) 했는지에 대해서 엄격하게 따져볼 필요는 있습니다.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돌이켜보면 IMF에 구조조정 지원을 요구하기 전에도 여러 민간 연구기관뿐 아니라 재경원에서도 정책 조정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습니다만 정치권의 지원도 거의 없었고 거기에다 정부 정책 운영의 리더십도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이런 위기 상황으로 치닫게 됐습니다. "

- IMF에 지원을 요청했는데도 외환위기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주가는 폭락하고 차입금리도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IMF의 실사가 시작된 현재도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개선될 조짐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IMF의 지원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문제가 무엇이고 얼마나 심각한지를 밝혀주는 첫걸음입니다.

되려 뼈를 깎는 고통과 어려움은 지금부터 시작되고,가중될 것입니다. 외국 정부과 금융기관은 IMF가 자금지원을 얼마나 할 것인가 그리고 미국.일본등 인접 국가의 협조는 어느 정도가 될 것인가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또 일부에서는 한국이 IMF의 요구를 신축성있게 수용할 것인가에 문제에 대해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모든 문제가 해결되기전까지는 금융시장의 어려움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마찰없이 하루 빨리 IMF와 협상을 끝내는 일입니다. "

- 일부에서는 정책 실기의 이유가 정책 결정을 총괄하는 통제탑이 부실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도처에서 위기신호가 울렸는데도 정부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대신 '기본 경제 여건이 호전되고 있다, 다른 나라와 다르다' 라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외국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우려를 제기했었는데, 왜 우리가 그동안 그토록 둔감했던 것일까요.

"경제지표가 개선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 우리는 두가지 실수를 범했습니다. 첫째는 외국 사람들이 국내 경제에 대해 국내에서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정통하다는 사실을 간과했다는 것이고, 정부의 정책조정이 원활하지 못했다는 것이 두번째입니다. 외국인들이 우리의 주장을 액면그대로 믿어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는 큰 오산이었습니다. 외국인들의 국내 금융기관이나 기업의 정보수집 양과 분석 수준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월등했어요. 주식 시장이 개방되고 국내 은행에 돈을 빌려주면서부터 외국인들은 국내 기업이나 금융기관에 대해 엄청난 양의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를들어 재벌의 경쟁력이 취약해지고 있으며 국제기준으로 따져볼때 국내 금융기관 부실이 정부가 주장보다 훨씬 많다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었지요. 게다가 환율을 방어하려는 정책이 잘못이었고, 기아사태에 대한 무원칙하고 정치권의 눈치만 살피는 대응이 결정적인 패착이었습니다. " - IMF가 권고하게될 구조조정은 어떤 식으로 진행될까요. 거시경제 부문부터 말씀해주시지요.

"IMF가 강조하는 것은 통화금융 측면의 구조조정입니다. 일차적으로는 한국이 외채 원리금을 갚을 수 있는 기반을 조성, 다른 국가의 신뢰를 회복할수 있게 하자는 것입니다. 따라서 경상수지가 개선될 수 있도록 국내 지출을 줄이는 방향으로 유도할 것입니다. 이와함께 금융구조 조정, 경쟁력강화를 위한 정부의 규제완화등도 IMF측에서 강조할 사항입니다. 반면 부실기업 정리나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 재벌 경쟁력 강화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크게 관여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설사 관여한다 하더러도 자금지원의 전제조건으로 이 문제를 거론하지는 않을 것으로 봐요. 결국 이 문제는 우리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

- IMF와 관련해서 기업들은 당장 어떤 준비를 해야 합니까.

"선진국 기준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후진성을 탈피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상호보증이나 상호주식 보유도 중단해야 합니다. 대기업 그룹은 종합재무제표를 작성해 경영실상을 투명히 해야 합니다.

투자의 합리성도 높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

- 어떻습니까. 수월하게 풀릴수 있는 내용은 결코 아닌데요. 국민들이 직면하게될 어려움은 어떤 것들인가요.

"IMF의 통화금융 프로그램을 이행하다보면 성장률은 필연적으로 둔화됩니다. 2~3% 대로 곤두박질할 가능성도 있어요. 결국 불가피하게 실업이 늘어나고 이에 따라서 엄청난 반발이 예상됩니다. IMF프로그램을 받아들였던 다른 국가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어요. 실업을 막자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해서 실질임금이 떨어져야 하는데 해결이 수월하지 않습니다. 대기업의 경쟁력을 키우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뒷받침이 있어야합니다. 그런데 IMF프로그램으로 성장률이 낮아지고 실업이 급증하는 가운데 실마리를 풀어나가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고민이자 어려움입니다. 차기 정부의 과제중 하나는 이러한 사회적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것입니다. "

- 금융위기의 진원지 처럼 지목되고 있는 종금사에 대한 정부의 구조조정 작업이 최근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종금사 부실은 결국 종금사가 난립했기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진입장벽을 낮춰 종금사의 경쟁력을 키우자는 취지에서 설립을 허가해줬던 것 아닙니까.

"종금사 부실은 금융자유화가 잘못 시행되어 부작용이 생겨난 극단적 예입니다.

지난해 종금사 여신은 전년기준으로 50%정도 늘어났는데 대부분이 부도 위기에 처한 기업으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결국 이 돈이 잠기기 시작하니 어려움을 겪는 종금사가 늘어나고, 전체 금융시스템에서 종금사의 역할이 붕괴되면서 자금경색이 오고 금리가 급등하는등 문제가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

- 종금사 구조조정 작업을 진행할때 유의할 점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종금사를 정리하더라도 금융경색이 심화되지 않도록 해야 하고, 또 다른 금융기관 부실로 이어지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 종금사의 역할을 대신할 기관이 나와야 합니다. 종금사가 망하면 기업뿐 아니라 종금사와 상호의존적 관계를 맺어온 은행들도 막대한 타격을 입습니다. IMF는 부실 금융기관의 정리를 종용할 것입니다. 노조문제가 얽혀있고 해서 이런 정리작업이 순조롭게 이뤄질수 있을 것이냐에 대해 사실 저는 낙관할 수없다는 생각입니다. "

- IMF와 협상과정에서 정부의 대응이 적절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정부가 여전히 투명하지 못하다는 것이지요. 협상과정에서 정부가 유의할 점은 어떤 것일까요.

"우선 구조조정으로 인한 부작용을 줄일수 있도록 IMF의 이해와 협조를 끌어내야 합니다.

구조조정으로 우리나라의 경제 잠재력 자체가 저해되어서는 곤란합니다. 다음으로 협상의 목표와 방향에 대해서 국민에게 분명히 알려 불필요한 불안감을 해소시켜야 할 것입니다.

현재 금융시장에서 벌어지는 혼란상의 일부는 IMF의 구조조정 작업이 미치는 영향력에 대한 단선적 소견에서 비롯되는 것도 있습니다. 이와관련 스웨덴의 예가 시사하는바 큽니다. 스웨덴정부는 과거 금융 위기가 발생했을때 정부가 솔직하게 이 문제를 공개하고 국민에게 협조를 구했습니다. "

- 위기 상황일수록 그것을 관리하는 사람과 조직의 대응력이 중요합니다. 과도기를 넘기기 위한 사람과 조직의 문제는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빨리 좌절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허탈감이 분노로 변해 파괴적 행위로 이어져서는 곤란합니다. 글로벌 경제의 일원으로 적응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중요합니다. 행동.조직.생각을 빨리 바꿔야 합니다. 우리와 외국사람의 구분은 불가능 할 뿐더러 그 결과 상대가 불필요한 의구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또 국내.국외의 구분이 명확한 국내 행정제도를 빨리 고쳐 유기적 협조가 이뤄지도록 해야 합니다. 양자를 합쳐서 조정할 만한 강력한 기구가 필요한 것입니다.

- 끝으로 IMF협상과 관련해 정치권에 요구하고 싶은 말씀은 없으신지요.

"구조조정을 해나가다보면 대부분 국민들의 소득수준이 낮아질 것입니다.

기업들도 뼈를 깍는 고통을 감내해야 합니다.

정치인들, 특히 대선주자들은 이런 어려움을 국민들에게 제대로 인식시키고 동참을 이끌어내는 리더쉽을 발휘해야 할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구조조정 작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요. 그런데 당선만 되면 된다는 생각인지 현재 듣기 좋은 얘기만 늘어놓고 있는 것 같아 정말 걱정입니다. "

정리 = 박장희 경제1부기자

[약력]

▶서울대

▶미네소타대 경제학박사

▶美 보스턴대 객원교수

▶한국은행 금융통화운영위원회 위원

▶KDI원장

▶대통령 경제수석

▶美 하버드대 객원교수

▶금융산업발전심의회 위원장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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