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선거와 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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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귀족정치를 최상의 정치형태로 생각했다.

여기서 말하는 귀족정치란 통치에 필요한 최적 (最適) 요건을 갖춘 소수에 의한 정치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덕 (德)에 의한 정치' 라고 표현했다.

귀족정치에 대립되는 것이 바로 금권 (金權) 정치다.

금권정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살았던 그리스 도시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치형태였다.

그후 나타난 제정 (帝政) 로마, 중세 이탈리아의 상업도시, 중세 유럽의 한자동맹 도시에서도 볼 수 있었다.

근세에 들어서도 금권정치는 계속됐다.

독일의 푸거가 (家) 와 영국의 로스차일드가는 군주에 대한 금융과 조세청부를 통해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현대정치에서도 돈은 중요한 요소다.

대중을 정치기반으로 하는 정당이 권력을 잡기 위해선 대중을 동원할 수 있는 정치자금이 필요하다.

오늘날 세계 각국에서 일어나는 정치 스캔들은 대부분 돈과 관련된 것들이다.

가장 많은 돈을 필요로 하는 것은 역시 선거다.

미디어의 발달, 정치광고의 고도화 등으로 선거엔 막대한 돈이 들어간다.

미국 워싱턴의 한 정치연구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96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 후보 봅 도울은 1억3천1백만달러, 민주당 후보 빌 클린턴 대통령은 1억1천3백만달러, 무소속 로스 페로는 3천7백만달러를 사용했다.

대통령선거 뿐만 아니라 의회선거에도 엄청난 돈이 든다.

연방 상원의원이 되려면 평균 4백70만달러, 하원의원은 67만3천달러가 있어야 한다.

상원의원 당선자의 88%, 하원의원 당선자의 92%가 상대방보다 돈을 많이 써서 당선된 사람들이다.

미국 정가에선 머지않아 '하원의원 = 1백만달러'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본다.

이처럼 돈이 정치를 지배하기 때문에 정치인으로 성공하려면 자신이 돈이 많거나 그렇지 않으면 남의 돈을 끌어오는 능력이 탁월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돈이 정치를 지배하게 된다. 현대 민주주의의 가장 심각한 위협이다.

대통령선거 투표일을 20여일 앞두고 각당이 상대방의 선거자금을 물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지난 92년 대선자금 의혹이 아직 해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대선자금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국가경제가 누란 (累卵) 의 위기에 처한 지금 돈을 적게 들이면서 선거를 치를 방법은 없을까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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