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이 총리, 개혁과 안정의 균형자 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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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해찬 총리후보자가 국회의 청문회와 임명동의안 처리라는 관문을 통과했다. 이로써 고건 전 총리 퇴임 1개월여 만에 총리 부재 상태를 해결하고 정부가 제 진용을 갖췄다. 52세의 '젊은 총리' 이해찬에겐 많은 기대도 있지만 우려 또한 적지 않다. 경제와 외교안보상 난제가 중첩된 어려운 시기여서 이 총리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 총리가 제청권을 행사한 각료는 한 명도 없는 '명목뿐인 이해찬 내각'이란 한계도 갖고 있다. 그가 정치권과 행정부에서의 경험을 잘 살려 그런 한계와 우려를 극복하고 명총리로 역사에 기록되기를 바란다.

이 총리에 우선적으로 주문할 것은 개혁과 안정의 균형자 역할을 해달라는 것이다. 이 총리는 노무현 대통령과 코드가 잘 맞아 앞으로의 국정이 강성 개혁 일변도로 치달을 게 아니냐는 우려가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사회의 중심추가 지나치게 한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폭 넓게 의견을 수렴해 조율해줄 것을 당부한다. 당장 경제가 활력을 잃고, 실업자와 신용 불량자가 양산되고 있으며, 노동계는 여름철 투쟁(夏鬪)을 본격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문제부터 제대로 챙겨야 한다. 또 수도 이전과 이라크 추가 파병 문제를 둘러싸고 우리 사회가 양분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몇차례에 걸친 공약과 발언 때문에 물러서기 어렵다. 이를 중재하고 연착륙시키는 데도 이 총리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 총리가 개혁의 주도권을 행사해야 할 현안도 적지 않다. 김선일씨 피랍 살해사건의 의혹을 규명하고 외교안보라인의 시스템을 정비하는 것이 급선무다. 툭하면 불거져 나오는 당정간 불협화음을 조율해내는 것도 이 총리가 정치력을 발휘해야 할 대목이다. 각종 정책을 마련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야당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대화하고 설득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이 총리가 대독(代讀)총리.의전(儀典)총리에 안주한다면 대단히 실망스러울 것이다. 마침 이 총리는 노 대통령의 신뢰를 받고 있다. 이 총리가 헌정사상 최초로 '책임총리'의 기틀을 세울 수 있는지는 그의 의지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