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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경제다, 이 밥통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걸프전쟁이 끝난 직후인 91년 2, 3월 조지 부시 대통령에 대한 미국 여론의 지지도는 90%가 넘었다.

부시는 미국 역사상 가장 탁월한 지도자의 한사람으로 의회에서 종전 (終戰) 을 선언했다.

소련.동구의 붕괴와 냉전종식의 공로까지 그에게로 돌아갔다.

不況에 둔감했던 부시 부시 진영은 92년 11월 대선에 대해서는 걱정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부시는 빌 클린턴이란 46세 무명의 후보에게 참패를 당했다.

대외정책의 승리에 도취해 있던 부시는 2년째 계속된 경제불황이 미국인들에게 주는 고통에 둔감해 패배를 자초했던 것이다.

부시는 걸프전쟁과 냉전 승리의 에너지를 경제불황을 해결하는 쪽으로 돌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1933년 대공황 당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라디오방송을 통해 미국 사람들에게 "지금 우리가 두려워할 상대는 두려움 그 자체뿐" 이라고 말해 국민들의 마음 속에 희망과 자신감을 심는데 성공했다.

미국인들은 최악의 경제위기 속에서도 루스벨트를 믿고 희망을 잃지 않았다.

불황 타개책으로 부시가 취한 조치는 대조적이었다.

92년 9월 그는 전화를 거는 사람에겐 29페이지짜리 '미국 재건을 위한 의제' 라는 책자를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불황대책의 근본은 국민들의 불안심리 해소에 있다는 것을 루스벨트는 알았고 부시는 몰랐던 것이다.

부시는 91년 가을 경기회복책을 제시하라는 공화당 참모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92년 2월 대선의 해 연두교서도, 그리고 8월 후보수락 연설도 불황에는 고집스럽게 침묵했다.

부시에 대한 지지율은 91년 봄부터 떨어지기 시작해 92년 1월 40%대, 선거를 5개월 앞둔 6월에는 30%대로 추락했다.

부시의 임기 4년 동안의 경제성장률은 0.4%대로 30년대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부시는 88대선때 세금 인상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곤 90년 여름 세금을 올려 불황을 재촉한 장본인이다.

그는 3천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 내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적은 1백만개에 그쳤다.

미국인의 80%가 경제가 잘못됐다고 믿었다.

92년 6월 실업률은 8년만의 최고인 7.9%로 뛰었다.

클린턴은 불황에 고통받는 미국인들의 불안심리를 놓치지 않고 경제를 살리기 위한 중장기 계획들을 잇따라 내놓았다.

클린턴의 선거본부 벽에 운동원 한사람이 '경제다, 이 밥통아!

(It' s economy, stupid!

)' 라는 구호를 써붙였다. 미국사회 최대 현안이 경제인데 불황에 둔감하고, 대책도 없고, 외교적인 업적만 내세우는 부시를 마음껏 조롱하는 이 한마디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클린턴이 경제에 착안하고 있는 사이에 부시는 클린턴의 병역미필, 영국유학 시절의 친소 (親蘇) 성향 의혹, 여자문제를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네거티브 선거운동에 열중했다.

그러나 직장을 잃고 내일이 불안한 유권자들에게 그런 인신공격이 먹혀들리 없었다.

대선에서 당적 (黨籍)에 관계없이 60%가 경제문제를 기준으로 투표했다.

인기위주 세후보 처방 지금 한국 경제위기는 92년의 미국 경제와 비교도 못할만큼 심각하다.

부시가 걸프전쟁 직후의 높은 지지율을 탕진하고 재선에 실패한 것 이상으로 김영삼 (金泳三) 대통령은 취임 초기의 황홀했던 지지율을 탕진하고 가장 무능한 대통령으로 파산지경의 경제를 후임자에게 물려주게 됐다.

한국 경제의 벽이 내려앉고, 천장이 무너지고, 기둥이 흔들리고 있다.

경제는 차기 대통령의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세 후보 모두 '경제다, 이 밥통아!' 를 실감하는 것 같지만 그들의 처방은 인기위주.득표위주요, 금융위기는 네탓이라는 추궁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

루스벨트 같이 실직자와 도산 (倒産) 한 기업인과 그 종업원과 가족들에게 확실한 희망과 용기를 보장하는, 실현 가능한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는 후보에게 유권자들의 축복이 있을 것이다.

김영희 국제문제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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