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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국민들을 언제까지 석면 공포에 떨게 할 셈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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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과연 ‘뒷북 행정의 달인’답다. 국민들을 석면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식품의약품안전청 말이다. 식약청은 이미 5년 전 베이비 파우더의 원료로 쓰인 탈크(활석)가 위험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그걸 지적한 연구용역 보고서를 제출받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다. 2005년과 2006년 유럽과 미국이 잇따라 베이비 파우더 등 영·유아 제품에 탈크를 쓰지 못하도록 규제에 나섰을 때도 그저 팔짱만 끼고 있었다. 이번에도 모 방송사 프로그램에서 문제를 제기한 후에야 부랴부랴 조사에 들어가 시판 중인 베이비 파우더 30개 중 3분의 1 이상인 12개에서 석면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무책임한 공무원들이 업무에 태만한 사이에 우리 아기들의 얼굴과 몸에 1급 발암물질이 골고루 뿌려진 걸 생각하면 분노를 금할 길 없다.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린 식약청은 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로 다음 날 탈크를 원료로 쓴 제품에 대해 시판 전 석면 검사를 의무화하는 고시안을 마련했다. 소비자들의 불안을 고려해 관련 절차를 생략한 채 즉각 시행에 들어간다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마음만 먹으면 그렇게 신속히 처리할 수 있는 일을 5년간이나 수수방관해 왔다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지난해 중국산 멜라민 분유 파동 때 안이한 인식과 늦장 대응으로 욕을 그리 먹고도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인가.

베이비 파우더로 촉발된 석면 사태가 화장품에 이어 의약품·생활용품까지 일파만파로 번지면서 국민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매일 먹고 쓰는 제품이 안전한지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런데도 식약청의 대응은 여전히 갈팡질팡이다. 석면이 검출된 탈크 공급업체 8곳을 공개했을 뿐 이 탈크를 공급받은 제조업체가 어디 어디인지, 이들 업체가 제조한 제품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등에 대해 명확한 방침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화장품업계와 제약업계가 발 빠르게 나서 문제 되는 제품을 자진 회수하겠다고 하니 모양새가 이만저만 우스운 게 아니다.

식약청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화장품과 의약품 속 석면의 안전성 기준을 조속히 제시해야 한다. 문제가 된 원료를 공급받은 업체들에 대해선 철저한 조사를 벌여 결과를 속 시원히 밝혀야 한다. 식약청 관할이 아닌 생활용품 및 철거 공사장·지하철역 등의 석면 위험에 대해서도 조치가 필요하다. 쓸데없는 공포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위험의 정도를 제대로 알리고 땜질식 처방이 아닌 근본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