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철학자와 '카페에서 대화'…'판타레이' 데 크레센초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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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헤라클레이토스 (B.C 540?~B.C 480?

) 는 누구인가.

소크라테스보다 앞선 그리스 철학자이지만 소크라테스만큼 유명한 인물은 결코 아니다.

철학사에 남긴 업적도 그리 높게 평가되지 않는다.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을 물이라 했다해서 '물의 철학자' 라 불리는 것처럼 헤라클레이토스는 불을 근원이라 주장해 '불의 철학자' 라고 알려진 정도. 그런 헤라클레이토스가 유럽에서는 이제 제법 평가를 받고 있다.

모두가 루치아노 데 크레센초라는 한 이탈리아인 덕분이다.

저명한 학자나 저술가가 아닌 평범한 엔지니어에 불과했던 데 크레센초는 고대 철학자들을 카페, 거리, 해변으로 끌어내어 잡담을 나누고 그 속에서 사랑과 에로스, 선과 악, 정치, 이성같은 전통적인 철학 주제를 토론한다.

94년 이탈리아에서 발표한 '판타 레이' 에서는 세상이 반대되는 양극단의 현상이 서로 반복되며 유지된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사상을 설파하고 있다 (리브로刊) .판타 레이란 그리스어로 '만물은 흐른다' 라는 뜻. 형식도 독특해 작가와 헤라클레이토스는 책 속에서 만나 서로 선문답 (禪問答) 같은 대화를 나눈다.

질서를 뜻하는 코스모스와 무질서를 뜻하는 카오스를 이야기하며 코스모스는 카오스로부터 태어났고 카오스는 코스모스로부터 생겼다는 순환적인 우주관을 설명한다.

자연은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대립되는 것들이 충돌하는대로 끊임없이 흐른다.

그의 말에 따르면 심지어 사물이 변한다고 말하는 순간 말을 꺼낸 사람마저 변한다.

책 속에서 두 사람은 레스토랑에서 스파게티를 먹기도 하고 텔레비전 토크쇼에 출연하는등 다양한 배경속에 등장한다.

1백29개의 단편적인 어록밖에는 남긴게 없어 가장 이해하기 힘든 철학가라는 수식을 달고 다니는 헤라클레이토스지만 이 책에서만큼은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책도 무거운 주제에 비해 평이한 어투를 그대로 사용해 어렵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77년 '벨라비스타는 이렇게 말하였다' 를 발표하며 데 크레센초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급부상했다.

그의 책들은 35개국에 번역출판되고 전세계적으로 1천만부가 팔려 나갔다.

20여편의 작품을 계속해 발표하면서 자신의 저술을 바탕으로 영화도 직접 만들고, 연극.비디오.사진집도 제작하는등 독특한 이력도 가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앞으로 철학서 '그리스의 현자들 - 그리스 철학의 역사1.2' '질서와 무질서' 와 소설 '헬레네, 헬레네, 나의 사랑' '네수노' 등 그의 책들을 잇달아 접할 수 있을 것 같다.

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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