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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 얼음 속에 잠든 미라의 저주-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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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령은 있는 것일까? 원래부터 없는데 있을 거라고 믿는 것은 아닐까? 그래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 인간이다. 없는 것은 불안하다. 신(神), 또는 창조주도 마찬가지다. 있어야 한다. 있다고 생각해야만 안전하다.

우연인가, 저주인가? 한여름 밤의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미라의 저주는 이집트 파라오에게만 일어난 게 아니다. 알프스 얼음 계곡에서 발견된 세계 최초의 미라에게도 일어났다.

우연인가, 저주인가?

아이스맨 외치가 처음 발견됐을 때의 모습. 독일 출신의 등반객 헬뮤트 지몬이 직접 찍었다.

1991년 이탈리아의 알프스 한 빙벽에 있는 얼음 속에서 미라가 발견됐다. 이 지역에 관광을 온 부부가 얼음과 흙더미에 갇혀 있는 미라 아이스맨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1차 대전에서 죽은 병사일 것이라는 추측이 많았다.

그러나 주위에 발견된 소장품을 비롯해 검시(檢屍)한 결과 놀랄만한 결론이 나왔다. 무려 5천300여 년이나 된 미라였다. 철기시대보다도 훨씬 전인 청동기 시대에 농사와 가축을 기르며 살았던 남성이다. 그런데 알프스 빙벽에서 우연히 발견된 것이다.

유럽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미라다. ‘파라오의 저주’의 주인공 투탕카멘(BC1361~BC1352)보다도 무려 2천년 선배다. 오늘날과 비교하자면 세상의 판(板)이 새로 바뀌는 밀레니엄이 5번이나 바뀌고도 다시 300년이 지날 정도로 오래된 미라다.

성경 속의 예언자 모세는 말할 것도 없고 BC 900년 경의 다윗보다, 그리고 간음의 자식이자 지혜의 왕으로 꼽는 솔로몬보다 오래된 인간이다. 아마 전설과 신화 속의 인물로 유대와 이슬람의 최초의 조상으로 일컫는 아브라함이 BC2000 년경이라면 그보다도 훨씬 옛날 사람이다.

아브라함보다도 오래된 인간 미라

신화 속에나 등장할법한 이 남자가 오랜 동면(冬眠)에서 깨어났다. 이 곳을 지나던 등반객이 곤히 자던 그의 잠을 깨우고 말았다. 그는 단단히 화가 났다. 그리고 자신을 돈 몇 푼 나부랭이로 흥정하는 세속(世俗)의 대상이 됐다는 것이 너무나도 불쾌했다.

분노에 찬 그는 그래서 자신의 몸에 손을 댄 사람들에게 저주를 내리기 시작했다. 뿐만이 아니다. 그 사람들을 도운 사람에게도 저주의 화살을 날렸다.

1991년 9월 19일 알프스 산맥 피나일봉 등반을 마치고 하산하던 독일인 등반가 헬무트 지(Helmut Simon)몬과 아내 에리카(Erika)는 해발 3천200m 부근 외츠 계곡 빙하지대에서 얼음 위로 상반신이 드러난 사체를 발견했다. 이 지역은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가 접하는 국경지대였다. 사체는 알몸이었다.

지몬 부부는 조난당한 등산객의 시신으로 여기고 곧바로 신고했다. 사실 이 곳에서 조난 사건이 자주 일어났으며 일부 시신들은 수습했으나 일부는 행방불명이 된 채 발견되지 않은 상태였다. 또 1차대전과 2차 대전 중에 죽은 병사들의 시신들도 때로 발견된 지역이다.

온난화로 얼음이 녹으면서 모습 드러내

지구온난화로 알프스의 경관도 변하고 있다. 원래 얼음으로 덮여있던 지역이 이제 하천을 이루고 있다.


아마 지구온난화 현상으로 얼음이 점차 녹자 얼음 속에 갇혀 있던 시신이 고개를 내민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만년설을 자랑하는 알프스의 설경도 최근 온난화로 점차 그 화려한 경관을 잃어가고 있다. 20년 후 알프스에서 스키를 구경하기 힘들 것이라는 비관적인 예측도 외신으로 흘러나온다.

그러나 시신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풀로 엮은 외투, 가죽옷과 모자, 칼, 도끼, 활과 화살이 담긴 화살통 등 고대 물건들이 함께 발견되자 고고학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시신은 5천300년 전 청동기시대(Chalcolithic) 유럽 사람으로 밝혀졌다. 가장 오래된 인간 미라가 출현한 것이다. 발견된 곳의 지명을 따 외치(Oetzi)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 얼음인간(아이스맨)은 163㎝ 정도의 키에 40대 후반의 남자로 DNA 분석 결과 유럽인의 조상으로 판명되었다.

1대3으로 적과 격렬히 싸우다가 죽어

외치가 죽은 시기는 늦봄이나 초여름께로 추정되며 사망 직전 두 차례 곡식과 야채, 고기로 식사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왼쪽 늑골 부근에 화살을 맞은 흔적이 있어 피를 많이 흘려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근 연구 결과 머리에 가해진 충격이 직접적인 사망원인일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외치는 다른 사람들과 격렬하게 싸우다가 결국 살해당한 것으로 보인다. 옷에 묻은 혈흔을 분석한 결과 각기 다른 네 사람의 피가 묻어있었다. 아마 알프스로 도망을 다니다가 결국 끝까지 따라온 적과 1대3으로 용감하게 싸움을 벌이다가 결국 상대방이 후려갈긴 방망이에 머리를 얻어맞아 죽은 것으로 보인다.

현재 외치는 북부 이탈리아 볼차노 지역에 있는 사우스 티롤 고고학 박물관(South Tyrol Museum of Archaeology)에 보관돼 있다.

그러나 외치는 그저 고고학적 연구대상으로 침묵만을 지키지 않았다. 자신의 잠을 방해했으며 자신을 한갓 돈벌이의 대상으로 만든 인간들에게 복수의 칼날을 갈기 시작했다. 아이스맨 ‘외치의 저주(Otzi’s curse)’가 시작됐다.

※ 다음 칼럼에 계속됩니다.

김형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