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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대 출신은 30%뿐 … “토론식 수업 못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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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지난달 31일 경북대 법과대학 501호 초당홀 강의실. 오후 1시30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의 헌법 수업이 시작됐다.

“헌법 제12조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미란다원칙은 형사소송에 관한 내용이지만 헌법에 실려 있습니다. 인권 현실을 강화하기 위해서입니다.”

경북대 법과대학에서 로스쿨 학생들이 헌법학 강의를 듣고있다. [경북대 제공]


박진완(44) 교수는 조문과 그 배경, 판례들을 설명해 나갔다. 토론식이 아닌 강의식 수업이었다. 이 과목 수강생은 로스쿨 120명 정원 중 71명.

박 교수는 “1학년 때는 토론식 수업을 가급적 자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로스쿨 신입생은 법대를 나오지 않은 타 전공이 70%쯤을 차지해 우선 법을 가르치는 일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두꺼운 책을 펼쳐 놓고 강의에 귀를 기울였다.

대학가는 물론 지역민의 많은 관심 속에 출발한 경북대 로스쿨이 출범 한달째를 맞았다.

경북대 로스쿨 학생은 120명 중 경북대 출신이 28명으로 가장 많다. 전체적으로는 수도권 대학 출신이 훨씬 많다. 연령대는 2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하다. 학부 전공은 인문사회계가 가장 많고 이공계에 예술학도 있다. 한 학기 등록금은 500여만원이다.

이들 대부분은 요즘 오후 11시까지 로스쿨에 마련된 도서관 지정석에서 책과 씨름한다.

포항 출신으로 한양대 법대를 졸업한 한정민(30)씨는 “그동안은 공부의 기준이 사법고시에 출제된 거냐 아니냐였다”며 “그러다 보니 공부는 수동적이었고 학원강사 책을 많이 참고했다”고 말했다. 그는 로스쿨에서 소수의견 등을 심도있게 공부하고 있다. 원룸 생활을 하는 그는 오전 7시부터 도서관에서 공부한다. 한씨는 “다른 전공 출신들이 처음엔 법대 출신에게 많이 물었지만 이제는 우리가 위기감을 느낄 정도로 빨리 따라온다”며 “다른 전공과 같이 공부하는 것이 유익한 게 더 많은 것같다”고 덧붙였다.

보험과 관련된 판례가 나오면 보험을 공부한 학생이 구체적인 설명을 곁들여 이해가 수월해진다는 것. 또 공대 출신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특유의 치밀한 방법론에 자극을 받기도 한다는 설명이다.

로스쿨 개원에 맞춰 교수는 36명으로 늘어났다. 건물도 새로 지었다. 학생 대표인 박현우(28)씨는 서울대에서 화공학을 공부하고 엔지니어로 일했다. 법학은 처음이다. 그는 특허 분야의 전문 변호사가 되고 싶어 입학했다. 이번 학기는 헌법·민법·형법 수업이 집중돼 있어 어렵지만 고생할 각오를 하고 있다. 박씨는 대구가 고향이지만 기숙사 생활을 하며 강의 시간을 제외하고 예·복습 등 하루 6시간씩 공부한다.

그는 “면학 분위기는 조성돼 있다”며 “설립 취지에 맞게 변호사시험법이 만들어져야 다양한 분야의 변호사가 배출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험 과목이 사법고시 중심에서 벗어나야 다양한 전공을 살리는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송의호 기자

“변호사시험 합격률 90%선 꼭 넘기겠다”
경북대 로스쿨 장재현 원장

“로스쿨 개원을 계기로 경북대 법대의 명성을 되찾도록 하겠습니다.”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장재현(60·사진) 원장은 “공부 열의는 대단한데 변호사시험법 등 여건이 호락호락하지 않아 학생들이 불안해 한다”며 “어쨌든 변호사시험 합격률 90%를 넘기겠다”고 말했다.

장 원장은 “학부 전공이 다양해지면서 교수들이 강의 때 눈높이를 맞추기가 어려운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필요에 따라 법대 출신과 사법고시 준비 경험자나 부전공자, 순수 타 전공으로 구분해 반을 편성한다. 수업 과정은 1학년은 기본과목에 중점을 두고, 2학년이 되면 경북대 로스쿨이 특화하려는 IT(정보통신기술) 분야와 관련된 과목을 많이 개설할 계획이다. 법학을 처음 공부하는 타 전공 출신을 위해 입학 전 열었던 예비 로스쿨처럼 여름방학을 이용해 특강을 마련할 예정이다.

그는 “특성화 분야는 수강 인원이 얼마나 될 지에 성패가 달렸다”고 지적했다. IT분야를 장려하고 싶어도 변호사시험 과목의 영향을 받아 수강 희망자가 적을 수도 있다는 우려다.

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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