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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거리 발사 기술 좋아져 … 미사일이면 ‘절반의 성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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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뉴스 분석 북한이 국제기구를 통해 사전 공개까지 하며 강행한 인공위성 발사가 결국 궤도 진입에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다. 북한의 주장대로라면 지금쯤 지구 주위 궤도를 돌고 있어야 할 3단계 추진체가 태평양 해상에 추락한 것으로 미국 정보기관의 추적 결과 확인된 것이다.

이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위신이 떨어지고 위협의 강도나 심각성은 당초 우려했던 것보다는 다소 약해지게 됐다. 그러나 이와 반비례해 국제사회의 제재 압력은 더 가중될 소지가 생겨났다.

우주 개발을 반대할 명분이 없다는 이유로 대북 제재에 신중한 입장을 유지해 온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이 그간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공조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그러나 궤도 진입 실패로 인해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에도 크건 작건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북한이 로켓 발사를 강행한 속셈이 위성을 운용하는 데 있다기보다는 군사적 목적, 즉 미사일 투발(投發) 능력을 과시하는 데 있었음이 보다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강한 제재를 추진해 온 한국과 미국·일본의 입장에서도 중국·러시아를 설득할 명분이 더 생겨났다.

미국은 발사 이전까지 북한 로켓의 성격에 대해 ‘우주발사체’란 용어를 사용해 왔으나, 이날 발사 직후 오바마 대통령이 ‘대포동 2호 미사일’이라고 규정한 것도 강력한 제재를 추진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한국 정부도 북한이 위성 발사에 성공할 경우와 실패할 경우로 나눠 시나리오별 대응책을 준비해 왔다.

하지만 북한 입장에서 보면 궤도 진입 실패가 곧바로 전면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북한의 목표가 애초부터 궤도 진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장거리 로켓 발사 능력, 다시 말해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사거리가 알래스카를 타격할 수 있는 8000㎞에 이르렀음을 이번 발사로 완전히 입증하지는 못했지만 1998년의 대포동 1호보다는 분명히 늘어났음을 입증했다. 일본 열도를 2100㎞나 지나간 2단 로켓 낙하 지점으로 이를 추정할 수 있다. 또한 발사 40여 초 만에 2단계 분리조차 못하고 해상 추락했던 2006년 7월의 시험발사 때보다는 훨씬 개량된 기술을 보여주었다. 최소한 2단계 로켓까지는 성공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의 입장에선 ‘절반의 성공’쯤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1·2단계 추진체가 멀리 날아간 것으로 봐서 탄도미사일 성격으로는 실패로 볼 수 없을 것”이라며 “개량을 거듭하면 성공 확률이 높아지는 만큼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위성 발사 능력을 가진 나라들 중에서도 단번에 궤도 진입에 성공하기보다는 서너 차례 실패를 거듭한 뒤 성공한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또 이번 발사의 데이터를 분석해 기술적 결함을 개선할 수도 있다.

문제는 북한의 추가 도발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는 데 있다. 북한은 대외적으로 “광명성 2호가 발사 9분여 만에 궤도에 진입했다”고 주장하며 ‘실패’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부적으론 새로운 강경책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 북한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 때문에 실패를 만회하기 위한 추가 발사 가능성, 더 나아가 2차 핵실험을 추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은 2006년 7월 대포동 2호 시험발사에 실패한 뒤 3개월 만인 10월 9일 지하 핵실험을 실시한 전례가 있다.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이 심해지면서 북한이 궁지에 몰릴 경우 그럴 가능성은 더 높아질 수 있다. 남북 관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북방한계선(NLL)을 트집잡으며 서해에서의 국지적 해상 도발을 일으킬 가능성은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 북한이 미국 여기자 2명과 한국의 개성공단 직원 1명을 억류하고 있다는 점도 향후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북한 전문가들이 “지금부터의 위험 관리(damage control)가 중요하다”고 지적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북한의 추가 핵실험 등 모든 상황을 염두에 두고 국제사회와 긴밀히 조율된 대응책을 마련해 가야 한다”며 “압박과 대화의 적절한 배합 비율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부 당국자는 “아슬아슬한 북한과의 게임은 지금부터 시작”이라며 긴장을 감추지 않고 있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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