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이제 냉정을 찾고 시스템 정비에 나서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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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선일씨 참사에 대한 국민적 슬픔과 분노가 사그라지지 않고, 정부의 무능.무책임에 대한 비판도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사태의 비중으로 볼 때 이러한 사회 분위기는 당연한 모습일 수 있다. 그러나 냉철하게 대처해야 할 후속 논의들까지 여론에 따라 감정적으로 흐르는 측면이 없지 않아 우려스럽다.

격앙된 여론 중에는 당장 책임자를 문책하라는 주문이 많다. 물론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정부의 책임은 막중하다. 따라서 관련 부처의 인사조치는 불가피해 보인다. 지금 당장 문책 인사를 단행한다면 국민 감정을 해소하는 데는 다소 도움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그걸로 모든 사태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보다 중요한 문제는 우리 외교.안보 시스템의 어느 부분이 어떻게 잘못됐는지 진단하고 잘못을 개선.보완하는 작업이다. 현재 감사원과 국회가 조사에 착수한 만큼 조사 결과에 따라 시스템 개혁에 매달리는 게 순서다. 책임자 문책과 후속 인사는 시스템 개혁을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검토될 일이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기능, 국정원이 중심이 된 정보관리체계, 해외공관의 업무시스템 및 근무자세, 외교관 선발제도 등 전반에 걸친 재점검은 흥분한 감정으로 될 일이 아니다.

국회의 대응도 차분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감사원 조사가 착수된 와중에 똑같은 내용의 국정조사를 똑같은 시기에 실시하겠다는 자체가 여론에 편승한 조치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감사원 조사 결과 미흡한 부분이 있으면 그때 해도 늦지 않다. 우려되는 제2, 제3의 테러방지와 파병군의 안전대책 수립 및 교민 보호 등이 현재 당면한 최대 현안이다. 자칫 중복되는 조사 때문에 현안 대처가 소홀해질까 걱정된다. 특히 양 기관이 각각 이라크 현지로 조사단을 파견한다니 그 또한 호들갑으로 비친다. 조사의 실효성도 의문인 데다 낭비적 요소가 크다.

시민들도 이젠 냉정을 되찾을 때다. 정부가 여론의 비판에 귀를 막아선 안 되지만 여론에 휘둘리게 해서도 안 된다. 땜질식 처방만 내놓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시스템 개혁이야말로 감정이 아닌 긴 안목과 치밀함이 요구되는 작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