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제, 고급 인력 키우는 사회제도로 정착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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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현장에서 어떤 인턴십은 정규직 채용과 실력 양성의 기회가 되고, 어떤 인턴은 단순· 반복 업무를 하다가 그만두고 있다.


서울 시내 한 구청에서 인턴으로 일하는 B씨(26)는 요즘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한다. 그의 하루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일은 오후 2시쯤 석간신문과 우편물을 챙겨 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할당된 업무도 없고 위에서 시키는 일을 한다. 주로 문서 전달, 복사, 영수증 처리 등이다. 그는 남는 시간에는 일본어 공부를 하고 있다. 그는 “나중에 어디 취직할 때 일종의 경력으로 적을 수 있을 뿐 다른 인센티브는 없다”며 “단순 아르바이트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 구청에서 인턴을 관리하는 공무원 K씨는 “행정 인턴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면서도 “인턴에게는 권한도 없고 책임도 없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업무 과정에서 생기는 잡다한 일 처리에는 도움을 청하지만 중요한 일을 인턴에게 맡길 수는 없다”며 “만일 그들이 실수를 하면 책임은 그 일을 시킨 담당자가 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인턴이 새로운 채용 패턴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는 이상 고급 인력을 키우는 사회적 제도로 정착시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인턴 제도는 사회적 타협점=한국경영자총협회의 이호성 이사는 “실업자가 곧 100만 명을 넘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일자리 만들기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정이 워낙 어려워 현재로서는 기업도 채용을 늘리기 힘든 상황”이라며 “현재의 인턴제도는 ‘일자리에 대한 일종의 사회적 타협점’”이라고 표현했다. 대기업은 인턴 채용 재원을 대부분 임직원의 임금 삭감·동결 또는 정규 신입사원 초임 삭감을 통해 마련한다. 정부와 공공 기관의 인턴에게 주는 급여도 결국은 세금이다. 대졸 취업난과 비정규직 문제를 다룬 『 88만원 세대』의 저자 박권일(33)씨는 “최근 인턴 채용 계획을 보면 잡셰어링이 아니라 풀타임 비정규직을 고용하겠다는 것”이라며 “인턴 입장에서는 기업에 애착을 갖기 힘들다”고 비판했다. 노동연구원의 남재량 연구위원은 “지금은 위기 상황으로 단기적인 처방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당장 청년실업자가 나오는데 이들을 실업자로 방치할 것인가, 단기 일자리라도 제공할 것인가 선택의 문제”라고 말했다.

◆“현업 부서에서 일하고 싶다”=중앙일보와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지난달 초 대학생 350명을 상대로 ‘인턴으로 일할 기업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이 무엇인지’를 물은 결과 ‘일하고 싶은 직종’(45.7%)에 이어 ‘정규직 전환 여부’(28.6%)가 2위였다. 본인이 원하는 직종에 인턴으로 지원해 정규직으로 이어지길 희망하는 것이다. 정규직으로 전환되는지와 함께 실질적인 능력 향상의 기회가 돼야 한다는 지적도 높다. 이 조사에서 인턴 과정에 가장 하고 싶은 것으로 ‘실제 업무 부서에서 활동’이 절반 이상(56%)을 차지했다.

최근 인턴을 모집한 KOTRA는 인턴제를 직업훈련 프로그램 형태로 운영할 계획이다. 인턴이 실제 무역 및 투자 관련 업무를 익힐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채용으로 연결돼야=에너지관리공단은 인턴 40명을 뽑아 이들 중 절반을 정식 직원으로 채용할 계획이다. 4~9월 6개월간 인턴으로 일하게 한 뒤 10월 중 성적 우수자 20명을 정규직으로 채용할 예정이다. 이들을 뽑을 때도 서류전형-필기시험-인·적성검사-면접 등 정규직과 같은 방식으로 뽑았다. 최근 인턴 84명을 뽑은 삼성증권도 실제 채용과 연계하고 있다. 4개월의 인턴을 마친 후 성적 우수자 40~50명을 6월에 정규사원으로 채용할 예정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의 변양규 연구위원은 “인턴의 정규직 전환이 어려울 것이라고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이들의 능력만 검증되면 정규직 채용을 할 것” 이라고 말했다.

글=염태정·김성탁·김기환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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