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경제구출' 한시가 급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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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17일 환율은 다시 뛰기 시작했고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금융개혁법안의 처리가 무산되자 실망한 투자가들이 행동을 개시했다.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얘기다.

정부는 이 참담한 현실을 타개할 방법을 내놓아야 한다.

미국의 BBB (투자대상으로선 최하위) 등급의 회사채 평균금리가 7.2%인데 우리의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발행한 양키본드는 연 9% 이상에 거래되고 있다.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실물경제가 건실하다는 정부관리나 일부 경제학자들의 말은 공허하다 못해 무책임하게 들린다.

매크로 (거시경제 숫자) 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경상수지상의 적자를 메우기는 커녕 만기가 돌아오는 빚을 상환할 길이 막막하니 이것이 국가부도가 아니고 무엇인가.

사태를 자력으로 해결할 시기는 지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제 다른 도리가 없다.

국제통화기금 (IMF) 이 심심찮게 거론되지만 방금 태국과 인도네시아에 구제금융을 제공한 뒤라 우리에게 꿔줄 돈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궁금하다.

더욱이 우리는 오늘 당장 달러가 필요한데 그렇게 신속히 움직여 줄까. 누구에게 돈을 빌리든, 스스로의 자구계획이 전제돼야 한다.

첫째,가뜩이나 부족한 외화를 낭비하면서 잡지도 못할 환율을 쫓아다닐 것이 아니라 시장에 맡겨 환율변동에서 오는 위험을 투기자금에 전가시켜야 한다.

둘째, 채권시장을 완전히 개방해야 한다.

10대 재벌이 넘어지는 판에 이들의 무보증회사채 개방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셋째, 금융기관이 안고 있는 부실채권의 실상을 공개하고 무슨 돈으로 해결할 것인지 밝혀야 한다.

10조원은 턱없이 부족한 액수인데 재정경제원은 언제까지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계속할 것인가.

'무기명' 채권이 금융실명제를 훼손한다면 도강세 (渡江稅) 만 물리면 어떤가.

넷째,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을 본격화해야 한다.

다만 금융은 민감한 부문인만큼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며 새 돈이 흘러들어갈 여지를 만들어줘야 한다.

다섯째, 노동시장을 포함해 실물부문의 구조조정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

넘어질 기업은 넘어져야 하고 부실재벌은 더 큰 재벌이 아니면 외국기업이 인수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성장신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통령선거까지 기다리기엔 사태가 너무 급하다.

덜 굴욕적인 길을 택하고 솔직히 국민의 이해를 구할 때다.

권성철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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