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복지 예산 가로챈 파렴치 공무원 이렇게 많다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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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복지 예산 횡령 비리가 감자 뿌리처럼 캐면 캘수록 쏟아져 나오고 있다. 올 2월 서울 양천구청에서 8급 직원 혼자서 26억4400만원을 빼돌린 게 발각돼 큰 충격을 준 것이 시작이었다. 이어진 감사에서 양천구청의 또 다른 비리가 드러났고, 서울 용산구와 전남 해남군에서도 억대 횡령이 포착됐다. 1일엔 감사원이 서울 노원구와 전남 여수시·완도군·고흥군 등 4개 지자체 공무원들의 횡령 사실을 추가 발표했다. 이로써 밝혀진 횡령액만 무려 40억원을 넘는다. 그러나 놀라긴 아직 이르다. 감사원이 이달 말부터 지자체와 관련 부처에 대해 전면 감사를 실시하면 얼마나 더 많은 비리가 드러날지 알 수 없다.

대통령도 지적한 것처럼 어려운 사람에게 갈 돈을 횡령한 것만큼 질 나쁜 범죄도 없다. 소년소녀가장과 독거노인, 장애인들이 끼니를 해결하고 방세를 내는 데 써도 모자랄 금쪽같은 예산을 외제 차 굴리고 해외 여행 다니는 데 펑펑 써버렸으니 말이다. 빠듯한 살림에도 꼬박꼬박 세금을 내온 국민 입장에선 이보다 더 분통 터지는 일이 없다. 국민들이 막대한 규모의 추경과 그로 인한 재정 악화를 묵인한 것은 당장 배곯게 된 이웃을 나 몰라라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귀한 돈이 악덕 공무원들의 배를 불리는 데 흘러간다면 누가 복지 지출의 부담을 나눠 지려 하겠는가.

혹여 복지 예산의 조속한 집행에 차질을 빚을까 주저하던 감사원이 칼을 빼 들고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감사원은 이번 감사를 횡령 비리를 발본색원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비리가 적발된 공무원에 대해선 이전처럼 솜방망이 처벌로 그칠 게 아니라 일벌백계 차원에서 엄히 처벌해야 마땅하다. 아울러 향후 비리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데도 힘을 기울여야 한다. 집행 항목이 100개에 가까운 복잡한 구조, 일선 공무원 한 명이 거액을 주무르는 허술한 운영 방식, 부실한 감사 체계 등이 고쳐지지 않는다면 사고는 계속 터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비리 공무원들의 단골 수법이었던 허위 자료 입력, 액수 부풀리기를 막을 수 있게 누구한테 어떤 항목으로 얼마를 지원했는지를 한눈에 보여주는 통합 복지전산망 구축이 시급하다. 시·군·구 차원의 자체 감사와 중앙 부처의 감사도 정기적으로 실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더 많은 취약 계층을 돕자면 복지 예산의 증액 못지않게 효율적인 시스템을 갖추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새는 구멍을 막을수록 사회안전망은 더 촘촘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