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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권력 세대교체 될까…장기집권에 '경제한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동남아 일대에 불어닥친 경제 한파가 일인 (一人) 장기집권체제 하에 있는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등에 오랜만의 정치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이른바 개발독재 아래 순항해온 최고 권력자들은 이제 경기침체에 덧붙여 본인의 고령과 건강으로 인해 후계자를 물색해야 할 단계에 접어들었다.

동남아 장기집권의 현장과 후계구도를 살펴본다.

올해로 31년째 집권함으로써 세계 최장기 독재자 반열에 들어간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대통령 (76) 은 현재 내년 3월 대선에 출마할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만큼 그의 권력욕은 아직 수그러들 기미는 아니다.

하지만 고령으로 인한 신체쇠약과 심장병 때문에 나라 안팎에서 후계구도를 둘러싼 얘기들이 무성하다.

인도네시아의 정치.경제가 족벌 (族閥) 경영으로 상징되듯 수하르토의 후계자로는 대통령의 맏딸 시티 하르디얀티 (48)가 첫번째로 지목된다.

수하르토는 묘하게도 아들들에게는 경제를 주고 맏딸에게는 정치를 주었다.

현재 집권당인 골카르당의 부총재를 맡고 있는 그녀는 수하르토의 3남3녀 가운데 유일하게 정치권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녀는 조만간 골카르당의 대표직에 올라 아버지의 권좌를 승계할 것이며, 이를 위해 내년 3월 대선에 아버지와 함께 러닝메이트로 나서리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수하르토 장기집권에 대한 민심이반이 한층 심해질 경우 수하르토측에서 볼 때 차선책으로 떠올릴 수 있는 인물이 하르토노 (56) 정보상이다.

동 (東) 자바의 제5육군관구 사령관. 국방참모지휘대학장관등을 역임, 국군참모본부. 사회정치담당 참모장. 육군참모장을 거친 뒤 정보상에 오른 그는 인도네시아에서 대통령이 되기 위한 세가지 조건인 '이슬람교도. 자바인. 군출신' 모두를 갖추고 있다.

그는 수하르토 대통령과의 친분관계가 두터운데다 군부내에 강력한 지지기반을 갖추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차기집권자로 단연 떠오르는 인물은 안와르 이브라힘 (49) 부총리겸 재무장관. 경제통인 안와르 부총리는 말레이시아 국내 뿐만 아니라 최근 동남아 금융위기중에서 국제적으로 마하티르총리 (71) 의 대안으로 떠오른 후계 '0순위' 의 인물이다.

마하티르총리는 집권 다음해인 지난 82년 운동권 출신의 초선의원인 안와르를 당에 영입한 이래 자신의 후계자로 키워왔다.

안와르는 이에 힘입어 집권 말레이민족기구연합 (UNMO) 의 청년지도자로 일했으며 문체부. 농업부. 교육부장관을 두루 거쳤다.

지난 91년부터는 재무장관을 맡았으며 93년부터는 부총리를 겸직중이다.

유네스코의 총회의장으로 활동한 그는 덕분에 국제적 인지도 측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5월말에는 이례적으로 2개월 동안이나 외유 (外遊) 를 떠난 마하티르를 대신해 총리대행을 맡아 국정책임능력을 검증받기도 했다.

다소 감정적이고 카리스마가 강한 마하티르와 달리 합리적이고 민주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안와르는 UNMO 내에서도 당청년국장시절 다져둔 소장세력들을 중심으로 지지기반을 확보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95년말 당대회에서 마하티르는 "새 총재의 시대가 조만간 올 것" 이라며 조기퇴진을 시사해 오는 99년 총선전에 안와르에게 총재직이 이양될 것으로 관측된다.

싱가포르의 경우는 리콴유 (李光耀.75) 전총리가 지난 90년 25년의 장기집권뒤 물러나고 고촉통 (吳作棟.55) 총리가 바통을 이어 받았다.

그러나 吳는 집권 7년이 지났지만 李가 여전히 실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후계자로 여겨지지 않고 있는게 사실이다.

최근 들어 리콴유의 장남 리셴룽 (李顯龍.45) 의 활동이 눈에 띄게 드러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사정과 무관치 않다.

그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영국에 유학, 케임브리지대를 졸업했다.

30세에 육군 준장으로 시작, 참모총장과 국방장관을 거쳐 상무장관을 역임하면서 후계자수업을 착실히 쌓아왔다.

지난 90년에는 리콴유의 총리 은퇴후 고촉통 총리와 함께 제1부총리직에 올랐다.

이 자리는 총리 유고때 그 직무를 대신하게 되는 실질적인 2인자의 자리다.

吳총리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리셴룽을 자꾸 앞세우는 점도 상징하는 바가 크다.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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