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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한양공원의 탄생 비밀을 아시나요

중앙일보

입력


서울 남산 꼭대기로 가는 케이블카를 타는 곳에서 소파길을 따라 올라가면 오른 쪽에 표석 하나가 서있다. 남산3호터널 북쪽 출입구 위쪽에 세워진 표석 앞면에는 한문으로 한양공원(漢陽公園) 네 글자가 쓰여있다. 한양은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세운 후 옮겨온 수도 서울의 옛 이름. 그렇다면 한양공원은 조선시대 만들어진 것일까.


표석 주위 어디에서도 이 공원을 설명하는 안내판은 찾을 수 없다. 기자는 가끔 이곳을 지날 때마다 공원의 탄생 유래가 궁금했지만 돌아서면 잊어버리곤 했다. 그 궁금증은 지난 3월 28일 서울시사편찬위원회가 마련한 답사로 풀렸다.

1894년 동학농민군의 봉기를 구실로 서울 남산에 군대를 주둔시킨 일제는 북쪽 기슭 땅을 영구적으로 임차해 남산대신궁(1898년), 통감부(1905년) 등을 설치했다. 자연히 이 주변에는 일본인 거주자의 수가 급속하게 늘었다. 1908년 일제는 옛 남산식물원 터부터 숭례문에 이르는 남산 서북쪽 일대 100만 평방미터(약 30만평)의 땅을 영구 무상으로 임대받아 공원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공원은 1910년 5월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고종은 개장식에 고종은 칙사를 보내 축하하며 ‘한양공원’이라는 이름을 보냈다. 표석에 쓰인 한문 글씨는 고종의 친필이라고 한다.

일제는 1916년 남산 전체를 공원화할 계획을 수립해 1918년 조선신궁을 옛 남산식물원 일대에 건립하며 한양공원은 문을 닫았다. 한양공원 표석은 원래 남산3호터널 북쪽 출입구 근처에 세워졌으나 터널을 뚫으며 지금의 자리에 옮긴 것이다.

조선왕조 이후 수도인 서울은 긴 역사만큼 수많은 문화유산이 거리에 널려있다. 매일 다니는 길도 무심코 지나치면 그곳에 흩어져 있는 문화유산과 그 역사도 지나치게 된다.

걷기를 권장하는 ‘워크홀릭’은 서울시사편찬위원회가 매달 한차례Tlr 여는 ‘역사학자와 함께 서울문화유산 찾아가기’ 답사에 동행하며 ‘지도’를 그려보기로 했다. 그 첫번째는 ‘서울의 중심, 남산을 거닐다’로 문을 연다.

글·사진/노태운 기자 nohtu@joongang.co.kr
도움말 주신 분/ 사종민 연구관(서울역사박물관 교육홍보과장)
박명호 전임연구원(서울시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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