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대학교의 '된 사람'만들기 교육…대학이 '직업훈련원'입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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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요즘 대학은 전쟁터에 비유된다. 취업난이 그만큼 심각하다. 학생들은 바늘구멍을 통과하려는 낙타의 마음가짐으로 취업전선에 임한다. 학교측도 “살아남기 위해선 경쟁력을 갖추라”는 전략을 학생들에게 ‘주입’한다. 그래서 학교가 앞장서 토익강좌를 개설하거나 모의 입사시험을 치르는 게 너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런 건 교육이 아니다”라고 용감하게 외치는 대학이 있다. 서울 구로구 항동에 있는 성공회대학교. 전교생 1천2백명인 이 ‘미니학교’의 교육 목표를 들어보면 어리둥절해진다. “우리는 한사람의 지도자 대신 더불어 사는 열 사람을 교육한다. ‘모범생’ 대신 ‘자기 식대로 열중하는’ 창의력 있는 전문인을 육성한다. 민족적 정체성을 버리는 세계화가 아니라 주체적 세계화를 지향한다.” 기타 등등.

하긴 이와 비슷한 문구 하나 걸어놓지 않은 학교가 어디 있겠는가. 명분만 그럴싸하고 실상은 다른 것 아닐까.

잠시 실제 모습을 엿보자. ‘교육학’강의 시간. 어째 수업 분위기는 아니다. 담당 고병헌 교수가 말문을 연다. “곧 있을 총학생회장 선거를 위해 학보사와 교내방송국에서 후보를 모시고 정책토론회를 갖기로 했답니다. 다른 이의 의견을 잘 들어주는 것, 남을 설득하는 것 모두 교육학의 주요 주제이므로 내 강의와 무관한 행사가 아닙니다.” 학생들은 수긍하는 눈치다.

이런 수업장면은 보통이다. 어떤 때는 영화스태프나 시민단체 활동가, 외국인노동자들이 직접 강의를 진행하기도 한다. 아카데믹한 지식보다는 삶의 현장에 존재하는 문제를 학생들에게 직접 맞닥뜨리게 하고자 함이란다.

사제관계도 유별나다. 교수 연구실뿐 아니라 총장실도 늘 열려 있다. 학생들은 학사와 관련된 일은 물론 개인적인 문제까지도 교수들과 상의하곤 한다. 교수가 이야기 나누고픈 학생을 쫓아다니기도 한다면 믿을 수 있을까. 이재정 총장의 말. “우리는 단순한 지식이나 기술보다는 학생들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가치관을 가르치고자 한다. 21세기형 시민을 키우겠다는 의미다.”

이 학교가 생각하는 미래의 최고 가치는 인권·평화·환경·봉사 등이다. 교양과정인 ‘사회봉사’‘인권과 평화’‘환경과 인간’‘인간과 복지’ 등은 가장 중요한 과목으로 꼽힌다. 특히 93년부터 필수과목으로 지정된 사회봉사는 4주간 이론수업,10주동안 사회복지기관등에서의 실습으로 진행돼 학내외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런데 학생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혹시 학생들은 취업등에 도움이 될 ‘영양가 있는’ 교육을 원하지 않을까. 능력보다는 ‘간판’이 우선시되는 우리 풍토에서는 더더욱 그럴 것 같은데….

졸업을 앞두고 있는 신학과 이세욱(27)씨의 말. “그런 친구들도 있죠. 하지만 대다수는 선생님들의 뜻을 존중하는 편이에요. 상투적인 말이지만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보다는 ‘어떻게 살 것인가’가 중요한 것 아닌가요? 졸업후 어디에 취직을 하든 건전한 시민으로 살렵니다.”

사회학과 2학년 임진희(20)씨도 비슷하다. “다른 학교로 편입할 생각도 했어요. 선생님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생각이 바뀌었죠. 뭘 할지 몰라도 자신감은 있어요.”

이같은 고민은 교수도 마찬가지다.

신문방송학과 김창남 교수의 말 - "가끔씩 내가 가르치는 게 옳은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막말로 '돈 안되는 것' 이잖아요. 하지만 아이들의 또랑또랑한 눈을 보면 마음이 달라지게 돼요. " 이재정 총장은 "시간이 지나면 이런 문제도 해결될 것" 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진정한 경쟁력은 실무능력이나 학벌에서 나오는 게 아니에요. 우리 아이들의 경쟁력은 '미래형 인간' 이라는 데 있죠. 머지 않아 '더불어 사는 법' 을 배운 사람이 직장과 사회에 꼭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많은 이들이 알게 될 거요. 이곳은 다음 세기의 명문대입니다.

" 문득 '21세기를 앞두고 진정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나' 라고 묻고 싶어졌다.

문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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