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S한국경제]5.허리띠 졸라매는 기업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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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20년 회사 생활에 요즘처럼 회사 경비 쓰는 일에 신경쓰일 때가 없었어요. 얼마나 어려우면 이럴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30%정도 차를 더 팔았는데 경비는 30% 줄였다는 말을 들었거든요. " 대우자동차 김종도 (金鍾道) 이사의 말이다.

그는 한달에 한번꼴로 부서회식을 했으나 요즘은 분기에 한번 정도로, 외부 고객과의 식사약속도 절반 정도로 줄였다고 한다.

경비절감 때문이다.

최근 대우그룹은 서울역앞 그룹빌딩 사무실의 2개짜리 형광등에서 1개씩을 떼어냈다.

50% 절전하기 위해서다.

그 결과 전체 등 (燈) 수가 3만개에서 1만4천5백개로 줄었다.

㈜대우의 경우 부서장들의 출퇴근용으로 운행하던 승용차 31대를 모두 없앴다.

접대비.복리후생비등 통제가능한 경비 20%이상 줄이기, 광고비 30% 삭감등의 그룹지침에 따른 것이다.

나아가 대우는 2000년까지 모든 부서 경비를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줄인다는 방침이다.

삼양그룹은 서울종로구 본사 정원에 30평 규모의 유리온실에서 난 (蘭) 을 기르고 있다.

거래선이나 고객에게 선물로 보낼 난을 꽃집에서 사지않고 아예 회사에서 키우는 것이다.

삼양사 총무부 정영보 (鄭永甫) 씨는 "한달 20개 정도의 난을 회사이름으로 선물하는데 화원에서 살 때보다 월2백만원가량 절약할 수 있다" 고 말했다.

삼양은 또 지방출장자들의 숙박을 호텔이나 여관이 아닌 회사 시설을 쓰도록 하고 있다.

공장이나 연수원의 기숙사.사택등을 숙소로 활용토록 해 숙박비만 월 4백만원 정도씩 아끼고 있다.

재계 4위 (대우) 와 38위 (삼양) 그룹에서 이 정도이니 다른 기업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최근 기업들은 이처럼 '티끌아껴 태산' 이요 '마른 수건도 다시 짜면 물기가 나올 수 있다' 는 자세로 경비절감에 나서고 있다.

강도도 갈수록 강해져 '짜지 않으면 죽는다' 는 비장함까지 깔려있다.

이제 회사 돈을 자기 주머니 사정과 다르게 넉넉히 쓸 수 있다는 것은 옛말이 돼 버렸다.

LG전자의 H상무도 요즘 마른 수건을 다시 짜느라 고민이 많다.

광고비.교통비.접대비등의 내년 예산을 20% 정도 줄여 다시 짜야하기 때문이다.

LG그룹 회장실 김영수 (金英壽) 이사는 "올해 이미 광고비등 간접비를 지난해에 비해 30%정도 줄였으나 내년에는 또다시 20% 삭감한다는 그룹 방침" 이라고 말했다.

2년만에 사실상 44%를 삭감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삼성물산은 최근 연간 6천건에 달하는 해외출장중 위로및 포상휴가, 세미나 참석등의 출장은 안보내기로 했다.

휴대폰의 개인용도 사용을 엄격히 금지했으며 광고비도 크게 줄일 것을 검토중이다.

현대전자의 경우 종래 특송편으로 보내던 해외수하물을 출장자에게 맡겨 운송료를 조금이라도 아끼고 있다.

국내 굴지의 자동차회사 비서실 K씨는 "요즘 사장님을 모시고 웬만한 고객접대를 할 경우에도 요리는 커녕 간단한 탕 한그릇과 소주로 때울 때가 적지않다" 며 "하물며 일반 직장인들의 경비사용은 말할 나위가 없다" 고 말했다.

중소기업들은 경비절감이 생존과 직결되는만큼 그 강도가 더욱 높다.

효진기기 (대표 金相哲.60) 는 출장비를 줄이기 위해 울산.아산.전주.군산.광주등 5군데 출장을 한데 묶어 보내고있다.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야간열차에서 밤을 지내고 새벽에 내려 지방을 돌게 한다.

선일섬유 (대표 全炳祚.54) 는 여사원등 사무직에도 원사 입출고나 경비.식당 일등을 맡겨 인건비를 줄이고 있다.

지금같은 때에 기업들이 할 수 있는 본격적이고도 구조적인 측면에서의 비용감축 방법은 사업구조 조정이나 감원등이다.

이에 비해 경상경비 절감은 노력에 비해 절감액수가 그리 크지 않지만 정신기강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동원경제연구소 임재수 (林在琇) 사장은 "최근 기업들이 구조개혁의 다른 한편에서 강도높게 경비절감을 추진하는 것은 다분히 다시 일해보자는 정신운동의 성격이 강하다" 고 평가했다.

신호제지 경영기획실장 함기수 (咸基壽) 상무는 "우리 기업과 국민들은 이제 '백 투 더 (Back to the) 60년대' 정신이 필요하다" 고 강조했다.

허리띠를 다시 졸라매고 높아진 씀씀이를 줄이는 것이 어렵고 일시적인 금단현상마저 따르지만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공인회계사인 박광수 (朴光秀.삼일회계법인 상무) 씨는 "눈에 보이는 경비절감만을 위기극복의 궁극적인 수단으로 삼는 데는 한계가 있는만큼 치밀한 계획아래 과학적으로 기업효율성을 높이는데도 기업들이 신경써야 한다" 고 말했다.

성태원.이승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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