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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나환자 불임시술은 사실" 미국 교포의사 참회 증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일제때 한국인 나병 남성환자에 대한 반강제적 불임시술은 사실이었습니다.

" 80년에 도미 (渡美) , 현재 로스앤젤레스 동부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김원달 (85) 씨는 1936년부터 12년동안 소록도 갱생원에서 나병 (한센병) 환자들을 상대로 의술을 펼치면서 자신도 불임시술에 직접 참여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金씨는 지난 7일 중앙일보가 일본 마이니치 (每日) 신문을 인용, '일제가 소록도 갱생원에 있던 한국남성 나병환자 8백40명에게 반강제로 불임수술했다' 고 보도한 내용을 보고 11일 중앙일보 LA지사에 이같은 사실을 증언했다.

고령으로 몸이 불편해 가족들의 도움을 받으며 가진 인터뷰에서 "갱생원 개원 초기인 36년부터 40년까지 4년동안 불임수술을 받은 환자가 8백40명이었던 만큼 해방전까지는 훨씬 더 많은 남성 나환자들이 불임시술을 받았을 것" 이라고 추정했다.

金씨는 24세 되던 36년 의사고시에 합격, 그해 5월 갱생원에 부임했다.

당시는 나병에 대한 의료계의 연구가 미흡해 나병은 신체접촉을 통해 전염되거나 유전되는 질병으로 알려졌던 시절이었다.

이에 따라 총독부는 전국에 산재해 있던 나환자들을 일반인과 격리시키기 위해 소록도에 갱생원을 설립했다.

그때 소록도에 수용된 한인 나환자들은 6천여명. 여기에 金씨를 비롯한 의사 10명과 간호원 50명, 행정직원 2백여명, 이들의 가족이 소록도에 거주했다.

당시 나환자들은 철저히 외부와 격리된 집단 거주지에서 생활했고 의료진 외엔 어떠한 외부인사들도 이들과 접촉이 금지됐다.

초기엔 남녀를 따로 수용했으나 점차 부부환자가 늘어남에 따라 동거를 인정했다.

남녀환자가 동거하기 위해선 불임수술 동의서에 도장을 찍어야만 했다.

그러다 40년초 일본인 원장이 불만을 품은 나환자에 의해 살해됐으며 45년 해방날에는 나환자들의 참았던 분노가 폭발, 폭동이 일어났다고 金씨는 전했다.

金씨 가족들은 金씨가 요즘도 당시 갱생원에 갇혀 지내던 나환자들의 '아픔' 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적실 때가 많다고 전했다.

LA지사 = 노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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