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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지도]71.뮤직비디오(1)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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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뮤직비디오는 국내에서 이제 일상이다.

하루종일 뮤직비디오를 틀어주는 대중음악전문 케이블채널도 두개나 되고 TV드라마 PD와 영화학도들은 '뮤직비디오' 같은 영상을 재연하느라 무진 애를 쓴다.

뮤직비디오는 80년대초 탄생 당시엔 음반홍보를 위한 선택이었을 뿐 필수는 아니었고 이를 외면한 뮤지션도 많았지만 요즘은 뮤직비디오 제작을 마다하는 가수는 없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뮤직비디오는 새 매체를 좋아하는 전위 뮤지션들에게는 신나는 실험대상이기도 하다.

백남준과도 작업한 로리 앤더슨이나 서구대학가에서 인기높은 그룹 토킹헤즈에 의해 뮤직비디오는 전위예술의 위치까지 올라갔다.

뮤직비디오는 단순한 라이브공연을 담은 것이 아니라 노래의 컨셉에 따라 연출해 낸 영상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뮤직비디오 원조로 여겨지는 비틀스의 영화나 우드스톡 페스티벌등은 역사적 의미 외엔 재고할 게 없다.

이렇게 볼 때 뮤직비디오는 한마디로 미국의 음악전문 케이블TV인 MTV에서 발원하고 지금까지 커왔다고 볼수 있다.

워낙 넓은 땅덩어리에 뮤지션들이 흩어져 살다보니 출연 섭외부터 힘든 데다 한국처럼 가수들이 노래 아닌 코미디등으로 '광대' 노릇 하는 일이 없어 시청자가 공중파TV에서 뮤지션을 볼 기회가 드물다.

그러나 MTV에서는 뮤직비디오라는 형태로 그들이 항상 등장하고, 특집을 통해 한자리에 모이는 마술도 가능하다.

81년 20만달러의 자본금을 갖고 음반판매증진을 목적으로 출발할 당시는 뮤직비디오만으로 하루24시간 방영한다는 것이 무리라 여겨졌지만 80.90년대를 거치면서 많은 후발주자들과 유럽.아시아.남미등에 지국을 거느린 팝계의 큰손으로 부상했음은 잘 알려진 바다.

뮤직비디오의 상징적 인물은 단연 마이클 잭슨이다.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스릴러' 앨범은 음악뿐 아니라 비디오사에서도 기념비적 궤적을 공유한다.

B급영화 감독이던 존 랜디스가 장기인 괴기영화풍으로 만든 '스릴러' 는 음악과 화면이 조화된 단편영화작품으로 인정받을 정도다.

앨범의 히트에 뮤직비디오덕을 톡톡히 본 잭슨은 새 음반을 낼 때마다 뮤직비디오에 엄청난 정성을 쏟게된다.

95년 실패작인 '히스토리' 에는 물경 7백만달러 (약70억원) 를 투입했다.

그러나 이는 그의 한계만 노출시켜 '잭슨의 시대는 갔다' 는 평을 들어야했다.

잭슨의 부상은 그 한사람의 인기보다는 흑인음악의 위상강화와 팝계의 판도재편이란 점에서 더 큰 의미를 지니고있다.

잭슨의 등장이전인 83년초까지 백인중산층에 주 타깃을 두고 흑인뮤지션에 대한 안배는 하지 않던 MTV는 잭슨이후 흑인뮤지션에 문호를 개방, 오늘날 랩, 힙합, 리듬 앤 블루스가 록과 함께 팝의 주요장르로 떠오르게했다.

잭슨과 80년대를 양분한 마돈나는 뮤직비디오에 있어서 잭슨보다 한수위의 전략을 구사, 성공했다.

자기세계에 도취돼 헤어나오지 못하는 잭슨의 피터팬식 비디오와 달리 마돈나는 자신의 음악사를 뮤직비디오로 정립했다.

데뷔초기의 불량소녀 모습에서 점차 마릴린 몬로의 닮은 꼴로 대중에게 집단최면을 걸고 이를 발전시켜 팜므파탈 (요부) 의 이미지를 완성한 것이 모두 뮤직비디오를 통해서였다.

이 두 스타만큼이나 뮤직비디오에 큰 덕을 본 반면 음악적으로는 평가절하를 당해야했던 대조적인 뮤지션이 영국출신 듀란듀란이다.

라디오중심으로 활동해온 미국가수들이 별다른 뮤직비디오를 내놓지 못하던 80년대초 수려한 외모와 세련된 뮤직비디오를 들고나온 이들은 MTV의 집중적인 방송대상이 됐고 단기간에 소녀팬들을 끌어모아 스타가 됐지만 이때문에 아티스트로서 진보할 기회는 놓쳐버렸다.

뮤직비디오 초기에는 이처럼 음악과 비디오의 역할이 전도되는 역기능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뮤직비디오는 대중음악 텍스트의 일부로 자연스레 편입된다.

이렇게되면서 음악은 별볼일없는데 비디오만 좋아 노래가 '뜨는' 일은 거의 없어지게됐고 오히려 노래가 좋다 보니 비디오 방송 수가 많아지는 경우가 늘어났다.

97년 MTV비디오뮤직상에서 최우수상후보에 오른 노다우트나 월플라워스 (보브 딜런의 아들 제이콥 딜런이 이끄는 록그룹) 의 뮤직비디오는 자체로만 보면 평범하기 짝이 없지만 음악적 성과때문에 높은 가산점을 얻었다.

또 최우수상을 탄 자미로콰이의 '버츄얼 인새너티' 는 질적으로 우수함에도 상업적 요소가 약해 파묻힐 뻔한 음악을 비디오가 살려낸 대표적 경우로 꼽힌다.

뮤직비디오는 명백히 80년대적 현상이지만 이때 등장한 신세대 뮤지션만 그 덕을 본 것은 아니다.

60, 70년대 출신의 노장들중에도 뮤직비디오를 적극적으로 이용해 살아남은 불사조가 많은데 그 대표격인 에어로스미스는 93년 '크라잉' '크레이지' 등 자기 노래의 뮤직비디오에 할리우드 신성 알리시아 실버스톤을 캐스팅하고 사이버공간을 화면에 도입해 10대들의 열광적반응을 얻어냈다.

멤버전원이 50줄에 접어든 최장수그룹 롤링스톤즈도 영상과 정지화면을 결합해 물결치는 느낌의 화면을 만드는등 선도높은 뮤직비디오로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토니 베넷.톰 존스.자니 캐쉬등 90년대들어 X세대들에게 별안간 환대받고 있는 노장들도 따지고보면 뮤직비디오 제작을 껄끄러워 하지 않는 젊은 마인드에 비결이 있다.

국내에서는 가수를 오디오형과 비디오형으로 가르는 관습이 있다.

비디오형은 음악보다 잘생긴 외모와 현란한 연출등으로 뮤직비디오에 기대 반짝인기를 얻고 사라지는 경우로 뮤지션으로 거론할 가치도 없고 오디오형은 음악적 요소와 신비한 이미지를 너무 강조하다보니 뮤직비디오를 거부하거나 수준 이하로 만들어 내놓는 경우로 이역시 상업음악을 하기에는 프로의식이 부재한 뮤지션으로 여겨진다.

뮤직비디오는 단순히 얼굴잘난 사람들을 위한 매체도 아니고 음악성을 내세우기 위해 기피 또는 폄하돼야할 매체도 아니다.

대중음악 선진국인 영미에선 이른바 오디오가 뛰어난 가수일수록 비디오도 그에 못지않은 수준을 자랑한다.

국내에서 시대착오적인 오디오.비디오가수의 이분법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아직도 가수들의 실력에 대한 의구심이 불식되지 못한 까닭이 아닐까?

박미아(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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