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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미술관 '전환의 공간' 전…미술사조의 세대잇기 '한자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5면

새로운 예술이 등장하는데는 충격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모더니즘은 제1차세계대전의 산물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을 가져온 전쟁은 베트남 전쟁. 베트남전쟁은 1945년 이후 미국이 누렸던 현실의 달콤한 행복과 진보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송두리째 부숴버린 전쟁이었다.

1967년 켄트주립대학에서 징병제를 반대해 데모를 벌이던 대학생 4명이 죽었다.

그때 미국 시민들은 2차대전의 승리가 가져온 행복감에서 깨어나 삶과 죽음.개인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이성의 절대성에 회의를 품게 되었으며 전쟁의 한 원인이었던 자유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미술계에서도 그해 '중심의 상실이 거론됐다.

이성 중심의 합리적 사고에서는 도외시돼온 감정과 느낌 그리고 주변적인 것으로 간주됐던 여성의 문제.신체.타인들이 그림속으로 들어오게 됐다.

이런 생각의 변화는 모더니즘의 무등을 탄 새로운 생각, 즉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불렸다.

호암미술관 소장품만으로 꾸민 '전환의 공간전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이 어떤 맥락으로 서로 닿아있으며 어떤 차이가 존재하는가를 대표적인 작가 33명의 작품 45점으로 말해주는 전시다.

(호암갤러리 12월28일까지 02 - 771 - 2381) 전시는 2차대전이후 현대미술의 중심이 된 미국에서 시작한다.

미국에서 탄생한 첫번째 미술사조가 추상표현주의. 추상표현주의는 있는 것을 그대로 그리는 리얼리즘의 반대편에 서있는 경향이다.

과거 추상회화와 다른 점은 작가의 생각 (이성) 은 완벽하기 때문에 그의 감정표현에 꺼리낄게 없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작가가 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아쉴 고르키다.

그가 열어놓은 길을 미국작가 윌렘 드 쿠닝이 지나갔다.

또 한편에서는 기하학적인 건축에서 영향을 받아 기하학적 구성을 보이거나 아무런 형상도 나타내지 않는 색채의 순수성을 추구하는 작가들이 등장했다.

조셉 앨버스.마크 로드코.모리스 루이스.데이비드 스미스 등이다.

온통 화면을 검은색을 칠하든 삼각형.사각형을 반복하든 그들은 이성의 무한한 힘과 완벽함을 믿었던 사람들이다.

이들의 활동을 지켜봤던 다음 세대는 사람손으로 만든 것같은 느낌을 걷어냈다.

공장에서 만든 것을 통해 '순수를 위한 순수' 가 표현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미니멀니즘의 등장이다.

애그니스 마틴.엘스워드 켈리.도날드 저드의 전시품은 공장에서 갓만든 것처럼 반듯반듯하고 윤이 나는 작품들이다.

또다른 미니멀아트 작가들은 공장제품같은 작품에 부딪치는 빛과 그것이 놓이는 공간을 주목했다.

벽에 반구 (半求) 형태를 걸어놓고 빛의 변화를 즐기는 로버트 어윈이나 형광등을 사용한 댄 플래빈의 작품은 이런 경향이다.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이성보다 개인의 생각과 느낌 그리고 체험등을 중요시한다.

요셉 보이스가 2차대전 당시 비행기추락에서 구출됐을 때의 경험을 죽을때까지 작품속에 끌어넣는 것이나 프랜시스 베이컨이 이성으로 이룩된 문명의 잔혹성을 고발한 것이나 여행용가방에 홍합껍질을 넣은 작품으로 일상성을 강조한 마르셀 브루테스의 작품이나 모두 이성보다는 감정을 대상으로 한 작업들이다.

몇개의 선을 그리고 지운 흔적을 작품이라고 내놓은 현대미술의 대가 싸이 톰블리의 말은 그야말로 포스트모던적이다.

"내가 그은 선은 무얼 설명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 내 개인적인 탐닉을 말해 주는 것들이다."

윤철규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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