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거의 눈, 해거름에 더 빛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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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을 확정한 뒤 우즈(左)가 캐디를 향해 환호하고 있다. [올랜도 AP=연합뉴스]

 땅거미가 지는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 베이힐 골프장에 타이거 우즈(미국)가 5m 버디 퍼팅을 앞두고 있다. 올해 이 정도의 거리에서 우즈의 퍼팅 성공률은 20% 정도였다. 넣으면 우승, 못 넣으면 연장인 중요한 퍼트였다. 다른 선수라면 부담감 때문에 성공률은 10%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우즈는 신중하게 브레이크를 살핀 후 부드럽게 스트로크를 했다. 땡그랑 소리와 함께 팬들의 함성과 우즈의 어퍼컷이 터졌다.

팬들은 우즈를 믿었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 NBA 챔피언 결정전 등 중요한 경기에서 종료 직전 승부를 결정짓는 슛의 성공률이 매우 높듯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도 이런 클러치 퍼트(승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퍼트)를 반드시 넣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우즈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출전한 지난해 US오픈 4라운드와 연장전의 18번 홀에서 승패가 걸린 퍼트를 거푸 우겨 넣는 등 클러치 샷에 강하다. 힘들수록 더 강해지는 것이 수퍼 스타의 특징이다.

함께 경기한 잭 존슨(미국)은 “못 넣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우즈가 꼭 필요할 때 퍼트를 실패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전혀 놀라지 않았고, 경이로울 뿐”이라고 말했다. 대회를 주최한 아널드 파머는 “이건 습관이다. 우즈는 항상 이렇게 한다”고 말했다.

타이거 우즈가 최고의 자리로 돌아왔다. 우즈는 30일(한국시간) 끝난 미국 PGA 투어 아널드 파머 인비테이셔널에서 우승, 무릎 수술 복귀 후 첫 챔피언에 올랐다. 3라운드까지 선두 숀 오헤어(미국)에 5타를 뒤졌던 우즈는 이날 3언더파 67타를 쳐 최종 합계 5언더파로 4라운드 3오버파, 합계 4언더파의 오헤어에 한 타를 앞섰다. 5타 차는 우즈의 PGA 투어 최다 타수 역전 우승 타이 기록이다.

14번 홀이 분수령이었다. 205야드 파3인 이 홀에서 우즈의 티샷이 벙커에 빠졌고, 1타 앞서던 오헤어는 5m 버디 찬스를 잡았다. 우즈의 벙커샷은 핀에서 4m나 도망갔다. 화가 난 우즈는 샌드웨지를 벙커에 집어 던졌다. 그러나 퍼터를 잡은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됐다. 침착하게 4m가 넘는 퍼트를 넣어버렸다. 오헤어는 버디 퍼트에 실패했다. 우즈는 “오늘 가장 중요한 퍼트였다. 넣지 못하면 끝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꼭 필요하기 때문에 우즈는 성공한 것이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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