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현철씨 보석결정에 왜 반발하나…“무죄 예고편인가”발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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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법원의 김현철 (金賢哲) 씨 보석 결정에 검찰이 재판부 기피신청까지 검토하는등 강력히 반발하는 것은 보석허가 자체보다 결정문에서 재판부가 밝힌 보석 결정 이유가 마치 무죄 판결문을 예상케 한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즉 현철씨측에서 보석신청을 한 만큼 허가여부는 재판부의 고유 권한이지만 사실심리도 해보지 않은 항소심 재판부가 무죄를 예고하는 것 같은 결정문을 작성한 것은 재판부의 월권 (越權) 이라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특히 일반 형사사건 보석 결정문의 경우 "보석을 허가한다" 는 주문 이외에 이유를 설명하는 것은 극히 드물다는 것이 검찰의 주장이다.

그런데도 현철씨 사건 재판부는 2쪽이나 이유를 장황하게 밝혔을 뿐만 아니라 내용도 재판부로서는 금기 사항인 무죄 예단을 가진 것처럼 돼 있어 검찰로서는 도저히 묵과할수 없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들은 "이번 보석허가는 항소심 재판부가 현철씨에게 무죄를 선고하기 위한 예고편이라는 느낌까지 든다" 고 말할 정도다.

현철씨 사건의 항소심 핵심은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특가법상 조세포탈죄가 그대로 유지되느냐 하는 부분. 이처럼 항소심에서 검찰과 현철씨측의 중요한 쟁점이 될 조세포탈죄에 대해 재판부가 보석허가 결정문에 "심리여부에 따라 무죄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고 밝혔으니 검찰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는게 법조계의 중론. 검찰의 한 관계자는 "조세포탈죄는 앞으로 비리 정치인등 수사에 중요한 판례가 될 수 있는 만큼 검찰로서도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사안인데도 재판부가 선입견을 갖고 있다면 현철씨가 세금을 포탈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무죄를 선고해 버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 고 우려했다.

그러나 이같은 검찰내부의 강경론과 함께 신중론도 없지는 않다.

신중론자들은 "재판부가 보석허가 때문에 여론으로부터 엄청나게 시달리고 있는데다 첫 공판도 내년 1월쯤으로 잡혀있으니 재판부의 정확한 의도를 파악한 뒤 기피신청여부를 결정하자" 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검찰이 재판부 기피신청을 낸다면 검찰사상 첫 사례가 된다.

지금까지는 모두 피고인측에서 신청했기 때문. 재판부 기피신청은 주로 5공시절 시국사건때 인권변호사들이 많이 내면서 국민들에게 알려진 제도다.

특히 박찬종 (朴燦鍾) 현 신한국당 선대위원장등이 기소된 이른바 '고대앞 시위사건' 재판때는 변호인들이 "재판부가 유죄선입견을 갖고 불공정한 재판진행을 한다" 며 1심에서만 무려 9차례나 기피신청을 낸 적도 있었다.

실제로 지금까지 재판부 기피신청이 받아들여져 재판부가 바뀐 대표적 사례는 70년 6월 재판이 시작된 김대중 (金大中) 현 국민회의 총재의 대통령선거법.국회의원선거법 위반 사건이 있다.

불구속사건으로 재판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다가 74년 6월 金씨에게 법원의 소환장이 배달되면서 시작됐으나 당시 재판장 朴모 부장판사가 유죄예단을 갖고 있다며 변호인이 기피신청을 내 4개월 뒤 대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져 재판부가 바뀌었다.

그러나 79년 명동성당 반정부 집회사건 1심때 변호인들이 제출한 재판부 기피신청의 경우 즉시항고.재항고를 거쳐 20일만에 최종적으로 기피신청 기각결정이 확정되기도 했다.

신동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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