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개혁- 뉴질랜드·호주를 가다] 中.15만 주민에 구청직원 3명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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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뉴질랜드 오클랜드시의 하윅 구청 (시청의 출장소) .인구 15만명의 지역을 맡고 있는 이 곳 정식 직원은 단 3명뿐이다.

동사무소 같은 하위 조직은 아예 없다.

일손이 달릴 때 임시직 5~6명을 더 쓰는게 인력의 전부다.

아무리 업무를 줄였다고 해도 직원 3명으로 어떻게 15만명의 주민들을 상대할 수 있을까. 더욱 신기한 것은 구청에 대해 불평하는 주민들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비결은 행정업무 대부분을 민간업체나 전문기관에 용역을 주거나 사업부로 독립시켜 놓은데 있었다.

남은 업무도 전화나 우편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정형화시켰다.

몇년전 뉴질랜드로 이민온 방근석 (方槿奭) 씨. 이민 오면서 받은 자동차 번호판이 마음에 안들어 작년에 '아시아나 (ASIANA)' 라는 영문 번호판 권리를 샀다.

그러나 구청에 가는 것이 귀찮아 번호판 교환을 미루던 方씨는 절차나 물어보자며 구청에 전화했다.

그러자 구청직원은 方씨의 주소와 현재 번호판 및 새로 산 번호판.자동차등록번호등을 물어 보고는 "며칠 후 새 번호판과 등록 서류를 보낼테니 양식에 맞게 작성해 반송하라" 고 했다.

3일후 方씨 집에는 새 번호판과 각종 등록서류는 물론 드라이버까지 반송용 봉투와 함께 배달됐다.

안내문에 따라 번호판을 갈아 끼우고 옛 번호판과 서류를 반송한 후 方씨는 구청에 다시 전화했다.

남은 절차가 있는지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구청의 대답은 "자동차등록에 필요한 수수료를 안내문에 써놓은 계좌에 온라인으로 입금하거나 수표책으로 보내면 그걸로 끝" 이라는 것이었다.

"간단한 절차에 우선 놀랐습니다.

게다가 한달에 수백건씩 들어오는 이런 업무를 세 명의 직원이 다 처리한다는게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번호판등을 보내주고 반송돼 온 서류등을 처리한 곳이 구청이 아니라 이 일만 전담하고 있는 민간 용역회사라는 것을 方씨는 나중에 알았다.

구청은 등록된 자료의 관리만 맡고 있는 것. 한국의 구청에서 하는 쓰레기 처리, 각종 건축 인허가나 불법 단속, 보건사업등도 뉴질랜드에선 전문기관이나 민간업체가 한다.

지방자치단체와 계약을 맺고 서비스를 대행하는 것. 이러다 보니 행정절차가 시민들에게 '번거로운 규제나 간섭' 이 아니라 '서비스' 로 느껴진다.

사람이 없으니 불필요한 규제도 없어졌다.

뉴질랜드 지방정부가 이처럼 변신한 것은 두말할 것 없이 중앙정부에 몰아친 '개혁바람' 때문이었다.

중앙정부에서 보조해주던 예산이 대폭 줄어 버리자 지방정부도 '몸집 줄이기' 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그래서 나온 원칙이 '수익성 있는 업무는 모조리 행정기관에서 떼낸다' 는 것이었다고 오클랜드 시청 관계자는 설명했다.

실제로 뉴질랜드 각 지방정부는 85~94년 사이 총6백여개에 달하던 지방정부 조직을 94개로 줄였다.

이에 따라 지방 공무원 숫자도 같은 기간 18만명에서 3만8천명으로 무려 14만여명이 감소했다.

공백은 민간업체나 전문기관이 메웠다. "지방정부가 달라지지 않았다면 정부의 개혁이 시민들에게 피부로 와닿지 않았을 겁니다.

뉴질랜드 개혁은 결국 시민생활을 바꿔놓은 지방정부 개혁으로 완성된 것이지요. " 오클랜드에서 만난 한 시민의 말이었다.

뉴질랜드 오클랜드 = 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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