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기를 찾아서]39.하노이의 21세기 경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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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베트남에서는 두 개의 혁명이 계속되고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북부에 있는 수도 하노이는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를 접합하고 있는 현장이며 남부의 호치민은 반대로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를 접합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는 뜻입니다. 독일통일이 평화적인 방법으로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를 병합한 것임에 비하여 베트남의 경우는 전쟁방식에 의하여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를 통합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베트남이 앞으로 쌓아갈 경험은 독일과는 다른 또하나의 과정을 우리들에게 보여줄 것입니다.

나는 하노이에 도착하자 바로 경제전략연구소의 누엔 쾅 타이부소장을 찾아갔습니다. 나는 먼저 베트남의 도이모이(改革)정책이 갖는 러시아,그리고 중국모델과의 차이에 대하여 물었습니다. 도이모이의 과정을 유형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복잡한 논의를 덜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상당히 긴 시간 동안 베트남의 독자노선(獨自路線)에 관한 설명을 듣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베트남의 노선은 그도 인정했듯이 기본적으로는 중국모델에 가까운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소위‘빅 뱅(Big Bang)’으로 불리는 러시아방식은 국가소유부문의 비중이 전체경제의 80%가 넘고,또 이 부문의 정체가 최대의 장애가 되고 있는 러시아로서는 당연히 충격요법에 의한 정치개혁 즉 이행문제(移行問題)를 축으로 전개해 가지 않을 수 없음에 비하여, 농업부문과 민간부문에 비하여 국유부문의 비중이 훨씬 낮은 베트남의 경우는 개혁의 초기조건이 중국과 비슷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비록 중국과는 국경문제로 군사적 충돌을 치르기도 하였지만 특히 북부베트남의 문화는‘감사하다’는 인사를‘까믄(感恩)’이라고 할 정도로 같은 유교문화권이라는 점도 중국방식에 대한 거리를 좁혀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최근에는 시장경제와 체제문제 사이에 갈등을 보임으로써 이행문제가 다시 부각되고 있지만 베트남의 개혁은 아직은 이행보다는 개발에 무게가 실려 있는 경제적인 것이 사실입니다. 정책관계자들의 대화중에“우리 당은…”이라는 말을 수시로 들을 수 있는 것도 그러한 증거의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아마 미국과 서방측의 관심이 중국포위라는 전통적인 아시아전략과 무관할 수 없으며 또 그것이 화평연변(和平軟變)이라는 체제붕괴의 전술이 아닌가 하는 경계심을 풀지 못하고 있는 데서 오는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당의 지도를 축으로 하여 유연하고 점진적인 정치발전으로 이행문제를 관리함으로써 지도중심이 급격히 무력해지는 소위 권력의 공동화(空洞化)와 그에 따른 혼란을 우려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지금부터 치러야 하는 가난과의 전쟁에서 결코‘승패가 역전되는 우(愚)’를 범하지 않으려는 의지이기도 할 것입니다. 어쨌든 외국자본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베트남의 도이모이정책은 이러한 외생적(外生的)계기를 어떻게 내부구조 속으로 정착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바로 이점에 있어서 베트남에서 벌이고 있는 대우그룹의 경제협력방식은 커다란 주목을 받고 있었습니다. 다른 국가의 많은 기업들이 돌다리를 두드리듯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고,그나마 단기적인 이윤에 집착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대우그룹의 방식은 한마디로 베트남이 불안을 느끼는 부분을 함께 껴안아주고 취약한 부분에 과감히 투자하는 장기적인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곧 베트남 사람들이 대우그룹에 대하여 신뢰감과 친근감을 보이고 있는 까닭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베트남 대우본부장은 그 어려웠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도로는 물론 전기,전화마저 여의치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사건건 소위‘사회주의적’감시와 규제에 부딪히지 않을 수 없었던‘개척시대’의 이야기였습니다. 호치민 지사장의 경우는 이러한 경협방식에 대하여 경영자로서의 자기자신보다는‘동반자(同伴者)’라는 훨씬 더 진솔한 인간적 보람을 느낀다고 술회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물론 베트남의 이러한 친절과 신뢰가 어떠한 수준의 것인지 알 지 못하고 또 대우그룹의 베트남 경영이 궁극적으로 어떠한 목표를 지향하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더구나 자본과 기업의 논리가 과연 어느 높이까지 동반자로 남게 할 수 있는가에 대한 확신도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어느 개인의 인생이든,또는 자본의 순환이든 동반의 제1조건은 착목(着目)하는 곳이 멀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목표가 멀수록 동반의 도정(道程)은 그만큼 길어지기 때문입니다. 긴 동반의 과정에서 가난을 인류의 공적(公敵)으로 통감하는 애정에 합의할 수 있다면,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함께’의 의미를‘달성(達成)’의 의미로 읽을 수 있다면 더욱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대우그룹이 베트남에서 축적하고 있는 경험은 앞으로 예상되는 남북의 경제협력을 위한 귀중한 경험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세기의 방법론(方法論)을 모색하는 실험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세계경영’으로부터‘세기경영(世紀經營)’으로 나아가는 귀중한 경험을 쌓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새로운 양식(樣式),새로운 철학의 탄생은 언제나 기득권이 보장된 안방에서가 아니라 멀고 불편한 땅에서 그 모태를 발견해온 것이 인류사의 역정(歷程)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베트남은 이처럼 세로운 세기의 실험장으로서도 매우 의미있는 과제를 대면하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나는 베트남의 가난한 농촌길을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베트남만큼 우리의 역사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곳이 달리 없다던 당신의 말을 떠올렸습니다. 오랜 식민지와 전쟁으로 이어져온 파란만장한 역사가 우리의 과거를 돌이켜보게 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베트남은 과거 남만(南蠻)이라 불리던 땅으로 부족장이었던 맹획(孟獲)이 제갈공명에게 일곱번씩이나 포로가 되면서도 끝까지 굴하지 않았던 칠금칠종(七擒七縱)의 땅이이기도 합니다. 베트남의 역사는 동이(東夷)라 불리던 우리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미래를 향한 끈질긴 간구가 들려오는 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의 베트남 역시 관리들의 부정과 밀수,매춘등 각종 사회부조리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개방과정에 있는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결정적인 차이는‘윗물이 맑다’는 사실을 들고 있습니다. 국가지도층의 청렴성과 헌신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부러운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설령 아랫물이 혼탁하다고 하더라도 윗물이 맑기만 하면 그것은 시간의 문제로 귀착되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점에서 호치민(胡志明)의 존재는 베트남의 귀중한 자산이 되고 있었습니다. 아시아에 대하여 인색하기 짝이 없는 서방측 언론에서도 그를 일컬어‘근원(根源)이며 방향(方向)’이라는 헌사를 바치고 있을 정도입니다.

나는 베트남이 중국보다 빠른 2020년에 현대국가로 일어서리라는 그들의 결의를 의심치 않습니다. 나로서는 베트남이 지향하는‘문명사회(文明社會)’가 어떤 것인지 알 수도 없고 또 베트남이 어떠한 우여곡절을 겪어갈지 알 수 없습니다. 적어도 그 문명사회는 답습과 추종이 아닌 온고(溫故)와 창신(創新)이라는 폭넓은 고민이 두루 총화되는 것이기를 바랄 뿐입니다.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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