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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생제 처방 다시 늘어난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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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뉴스분석항생제를 많이 쓰면 좋을 게 없다. 몸에 내성이 생겨 약을 쓰더라도 듣지 않는다. 그러다 메티실린(항생제)에 내성을 보이는 황색포도상 구균(MRSA) 같은 강력한 세균이 득실거린다. 미국 같은 나라에는 어떤 약을 쓰더라도 듣지 않는 수퍼박테리아가 여기저기서 발생한다. 우리도 수퍼박테리아로 볼 수 있는 초강력 세균이 등장했다.<본지 3월 3일자 10면>

항생제를 줄이기 위해 몇 가지 정책이 시행돼 왔다. 2000년 의약분업과 2006년 항생제 처방률 공개가 대표적이다. 의약분업은 의사만 알고 있던 처방전을 외부 약국에 공개함으로써 의사들의 항생제 처방을 줄이려 했다. 그게 생각만큼 효과를 못 내자 의료기관별 처방률 공개 카드를 꺼냈다.

하지만 그것마저 반짝 효과로 끝났다. 2006년 처방률 공개로 54.9%로 떨어졌다가 2007, 2008년 2년 연속 올라갔다. 주사제 처방률도 2002년 이후 떨어졌다가 2006~2008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이화여대 정상혁(예방의학과) 교수는 2000~2005년 의약분업에 20조원가량이 든 것으로 추정한다. 돈이 많이 든 비싼 개혁이었지만 비용에 비해 효과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의약분업보다 항생제 처방률 공개가 효과가 더 컸다. 의사들이 ‘저 병원은 항생제를 많이 처방하는 곳’이라는 낙인을 피해 처방을 줄였다. 하지만 그것마저 약발이 오래가지 못했다. 물론 항생제 처방률 상승에는 다른 요인이 있다. 약을 좋아하는 뿌리 깊은 관행이다. 의사와 환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항생제를 먹고 하루빨리 감기가 떨어지기를 바란다. 의사는 항생제를 처방하지 않으면 ‘용하지 않은 의원’으로 인식될까 봐 항생제를 처방한다.

주사제도 마찬가지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 김미란서울소아과의원 김미란 원장은 “과거에 비해 주사제가 필요한 세균 감염이 줄었지만 동네 의원들은 여전히 주사제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며 “주사의 효과를 과신해 처방을 요구하는 환자의 영향도 있다”고 말했다. 우리한테는 외국처럼 항생제를 안 쓰고 집에서 푹 쉬면서 감기를 치료한 경험이 축적돼 있지 않다. 그러다 보니 ‘주사 한 방’에 대한 향수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선진국의 항생제 처방률은 10~40% 정도다. 외래환자에게 주사를 놓는 비율은 미국 5%, 영국·스웨덴이 1% 이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재국 선임연구위원은 “항생제·주사제 처방률을 공개한 지 3년이 지나면서 효과가 무뎌졌다. 특히 의사들의 감각이 무뎌졌다”며 “의료계가 학회 차원에서 항생제를 줄이려 노력하는 게 가장 좋은 대안”이라고 말했다. 또 지역이나 환자의 연령별, 동네 의원의 진료과목별로 처방 실태를 정밀하게 분석해 항생제 남용에 대한 인식을 바꿔 나가야 한다. 신성식 사회정책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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