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 역경 속에서 할 수 있다는 희망 … 김인식 ‘믿음의 리더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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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식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24일(한국시간) 미국 LA의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결승에서 일본에 3-5로 졌다. 기자회견에서 “선수들이 너무 잘해 줘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정말 잘 싸웠다”고 그는 말했다. 김 감독이 스스로 표현한 ‘위대한 도전’은 이렇게 끝이 났다.

무척 이기고 싶었을 것이다. 어쩌면 생애 마지막이 될 숙적 일본과의 대결에서 석패한 노장의 마음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하지만 김 감독은 패자가 아니다. ‘우린 해낼 수 있다’는 희망을 또렷하게 심어 줬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WBC 준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룩하며 한국인의 역동적 에너지를 보여 줬다.

 지난해 대표팀을 꾸릴 때부터 김 감독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대표팀 코치로 선임하려던 김재박(LG)·김시진(히어로즈)·조범현(KIA) 감독이 “소속 팀에 전념해야 한다”며 합류하지 않았다. 이어 에이스 박찬호(필라델피아)와 중심 타자 이승엽(요미우리)·김동주(두산), 그리고 수비의 핵 박진만(삼성)이 이런저런 이유로 빠졌다.

기둥이 없었다. 뺄 선수를 빼고 모인 대표팀 선수 28명의 평균 나이는 26.4세. 메이저리거는 추신수(클리블랜드) 하나였다. 평균 연봉은 3억원이 되지 않았다. 숫자로만 보면 16개 참가국 중 최하위권에 속했다.

시작이 미미했기에, 환경이 열악했기에 김 감독의 지도력은 더 빛을 냈다. 9경기를 치르면서 선수 기용, 작전 구사, 상대 분석에서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 김 감독에게 패한 적장들은 자국의 비판에 시달렸다.

상대는 한국 야구를 ‘스몰볼’로 예단하다가 홈런을 얻어맞았다. ‘롱볼’에 대비하다 현란한 작전에 당했다. ‘타짜’ 김 감독은 버릴 때는 과감했고, 손에 쥘 때는 악착같았다. 그는 선수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른 야구, 이른바 ‘토털 베이스볼’을 세계 무대에 알렸다.

김 감독은 “야구도 사람이 하는 거다. 사람에게 맞는 전략을 짜야 이긴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는 코치 7명과 선수 28명을 자신의 야구 도구로 삼지 않았고, 그들의 마음부터 움직였다. 그래서 선수들은 절뚝이는 감독을 충심으로 따르고 그라운드에서 몸을 던졌다. 그래서 김 감독의 야구는 ‘휴먼볼’로도 불린다. 대한민국은 경제의 위기, 정치의 위기다. 국민은 강력한 리더, 존경받는 영웅을 기다린다.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마음을 얻어 행동을 이끌어 내는 김 감독에게서 위기관리형 리더의 해답이 보인다.

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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