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로켓 발사 앞두고 긴박한 인천공항 항공교통관제센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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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로켓 발사를 앞두고 인천공항 항공교통관제센터에서 박성언·함정표 관제사(앞쪽부터)가 북한 영공을 통과하는 비행기의 항로를 지켜보며 하늘길을 안내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영종도의 인천공항 내에 자리 잡은 항공교통관제센터. 23일 오후 4시30분. 레이더를 들여다보던 함인찬 관제팀장이 호흡을 가다듬고 ‘P-yang(평양)’으로 표시된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이곳과 북한 평양지역관제소를 잇는 핫라인이다.

그는 “알파 브라보, VLK742 30분 뒤 칸수(KANSU) 도착”이라고 짧게 교신했다. 김해공항에서 이륙한 러시아 여객기 한 대가 30분 뒤 북한 영공 초입인 칸수에 진입한다고 통보한 것이다. 잠시 뒤 수화기 너머로 북한 억양의 “찰리 델타, 접수했다”는 응답이 들렸다. 30분 후 러시아 여객기가 북한 영공에 진입했다. 그 순간 항공교통관제센터 내 30여 명의 관제사들은 일제히 숨을 죽였다.

함 팀장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레이더에 점으로 표시된 여객기를 응시했다. 그의 옆에는 평양관제소, 여객기 조종사와 즉각 교신할 채비를 마친 관제사 두 명이 대기하고 있다. 두 관제사는 10년 이상 된 베테랑들이다. 마침내 여객기가 북한 영공을 무사히 통과하자 ‘아~’ 하는 짧은 탄식이 어딘가에서 터졌다. 내외국인 200여 명이 탑승한 여객기가 북한 영공을 안전하게 통과한 데 대한 안도의 한숨이었다.

항공교통관제센터에서는 요즘 들어 하루에도 예닐곱 번씩 이 같은 긴박한 장면이 펼쳐진다. 북한이 5일 키 리졸브 훈련을 이유로 북한 영공 내 민항기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고 발표하면서부터다. 물론 국적기와 미국·프랑스 등 하루 평균 40여 편의 항공기는 북한 항로 대신 우회로를 이용 중이다.

하지만 하루에 홍콩·중국·러시아의 항공기들 7~8편이 여전히 북한 항로를 통과하고 있다. 함 팀장은 “평양관제소와의 교신이 두절되면 항공기 비행정보를 넘겨줄 수 없고 안전 역시 담보할 수 없다”며 “비록 국적기는 아니라 하더라도 수백 명의 안전이 걸려 있어 항상 긴장된다”고 말했다.

그는 “그전에는 평양과의 교신은 일상적이었다”며 “로켓 발사 때까지는 긴장을 풀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항공교통관제센터의 레이더에는 하늘을 나는 항공기가 점으로 표시된다. 5일 이후 북한 항로를 이용하는 항공기가 급감하면서 북한 쪽 하늘을 나타내는 레이더 화면은 텅 비어 있다. 우리 쪽 영공에 항상 100여 개의 점이 북적거리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판식 관제과장은 “북한 영공의 점은 확 줄었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24시간 특별 공역 감시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 영공 구역은 보통 관제사 한 명이 항공기 서너 대를 책임진다. 하지만 북한 영공과 인접한 구역에는 경력 10년 이상의 관제사 세 명이 달라붙어 있다는 것이다. 한 과장은 “항공기 항로는 구름이나 바람 때문에 수시로 변경된다”며 “북한 항로를 우회하다가도 바람 때문에 북한 영공에 근접할 수 있어 감시를 게을리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항공교통관제센터는 북한이 4월 초 로켓을 발사할 경우 궤도를 추적해 주변을 지나는 항공기나 선박에 주의보를 내려야 한다. 1분도 안 걸리는 짧은 시간이라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이곳에는 평양지역관제소와 다섯 개의 핫라인을 가동하고 있다. 평양~판문점~영종도를 잇는 유선 전화선 2개와 위성 전화선 1개 등이다.

핫라인은 1998년 남북한 합의로 개설한 이후 단 한 차례도 끊긴 적이 없다. 평양의 관제사들과는 한국말로 교신한다. 일본이나 중국 관제소와 교신할 때는 영어를 사용한다. 항공교통관제센터는 4월 북한 영공에 대한 관제를 더욱 강화한다. 김근수 센터장은 “로켓 발사에 대비해 숙련된 관제사와 선임 관제사, 감독관을 2중 3중으로 배치해 항공기 안전을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영종도=장정훈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항공교통관제센터=한반도 주변 상공 43만㎢를 지나는 모든 항공기에 안전하고 신속한 하늘길을 안내하는 ‘하늘의 컨트롤 타워’이다. 하루 평균 1200여 대의 항공기가 이곳의 관제를 받아 북한·중국·일본·러시아 영공으로 나가고 우리 영공으로 들어온다. 항공기 한 대당 승객을 200명씩 잡으면 하루에 2만4000여 명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셈이다. 관제사 290여 명이 근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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